대옥이 희봉을 가만히 살펴보니 그 옷차림과 용모가 여간 화려한 것이
아니었다.

쪽진 머리에는 팔보(팔보), 구슬들이 금실에 꿰어져 얹혀 있고, 머레에
꽂힌 금비녀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날으는 다섯 마리의 봉황새 모양을 하고
영롱한 진주들을 드리우고 있었다.

목에는 뿔없는 용 모양의 금줄에 구슬들이 달린 목걸이를 걸고 있고,
몸에는형형색색의 무늬가 박인 양단 저고리와 마고자, 비단 치마 들을 입고
있었다.

대옥이 희복의 모습에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희봉이 대옥을
꼬옥 껴안으며 말을 이었다.

"할머니께서 그동안 꿈에도 못 잊으시고 늘 대옥 아씨 이야기만 하셨다오
쯔쯔, 이리 어린나이에 어머니를 잃다니" 희복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자
대옥의 회할머니 사씨부인이 억지로 웃으며 희봉을 나무랐다.

"방금 내 마음이 좀 진정되었는데, 네가 또 내 눈물을 자아내려 하는구나.

그리고 이 아이도 많이 울다가 겨우 울음을 그쳤느니라. 다시는 그런
이야기 꺼내지 말아라" "아이구, 내가 늦게 나와서 실수를 했군요" 희봉이
죄송한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지으려고 애썼다.

그리고는 대옥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말했다.

"이 집에 온 이상 이제는 고향 집 생각일랑 하지 말아요.

그리고 먹고 싶은 것이나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내게 말해요.

또 할럼이나 시녀들이 속을 썩이면 그것도 내게 말해요.

혼을 내 줄 테니까" 이때 시녀들이 차와 과일을 내오고,희봉이 대옥과
다른 부인들에게 그것들을 권하였다.

그렇게 다과들을 들고 난후, 사씨부인, 즉 대부인은 두 할멈들에게 대옥을
데리고 가서 외삼찬들에게 인사를 시키라고 하였다.

그러자 맏아들 가사의 아내인 형(형)부인이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데리고 가는 것이 좋겠어요" 그리하여 형부인이 대옥을 데리고
수화문을 나섰다.

그러자 하인들이 수레를 끌고 와 기다리고 있다가 대옥 일행을 수레에
태웠다.

그런데 가사 대감은 대옥을 보려고 하지 않고 사람을 보내어 자신의
마음을 전하였다.

"대감님께서는 며칠째 뭄이 좋지 않는데,지금 아씨를 보면 죽은 누이
생각으로 몸이 더 안 좋아지실 겁니다.

그래서 대감냄께서는 조금 나중에 아씨를 뵙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아씨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이, 이곳을 제집처럼 생각하고 편히
지내시라는 겁니다.

혹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즉시 대감님에게 말씀 올리리고도 하셨습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