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옥이 보니 중앙의 정문은 굳게 닫혀있고 동서 양쪽의 각문으로만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대옥이 고개를 들어 정문위에 높이 걸린 현판의 글자들을 올려다
보았다.

"칙조녕국부"

임금이 지으신 녕국부라. 저 대궐같은 집이 바로 외갓집의 큰집이구나.

대옥은 큰 대문과 높은 담장, 담장너머로 보이는 웅장한 지붕들에
눈이 휘둥그래질 지경이었다.

거기서 서쪽으로 더 나아가니 역시 같은 크기의 대문이 나타나고,
그 위의 현판에는 "칙조영국부"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중앙의 정문을 통과하지 않고 서쪽의 각문을 지난 얼마쯤 들어가
가마꾼들이 대옥이 탄 가마를 길옆에 내려놓고 물러갔다.

대옥은 여전히 가마에 앉아 있고 뒤따르던 다른 사람들은 가마에서
내렸다.

그때 모자와 옷을 차려입은 열 일여덟살쯤 되어 보이는 하인들
서너명이 나와 대옥의 가마를 메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그 뒤를 걸어서 따라갔다.

하인들이 수화문 앞에서 가마를 내려놓고 물러가자, 뒤따르던 늙은
하녀들이 다가와 가마의 문발을 들치고 대옥을 부축하여 가마에서
내리게 하였다.

대옥이 수화문으로 들어서니 양옆으로 행랑이 죽 달려 있었다.

자단 나무 받침대위에 세워져 있는 병풍모양의 거대한 대리석을
돌아 들어가자 삼칸짜리 대청 너머 본채뜨락이 펼쳐졌다.

정면에 보이는 다섯칸 크기의 상방은 그 들보와 기둥이 온갖 조각과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 양옆으로 행랑을 따라 곁채들이 달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앵무새를
비롯한 각종 새들이 들어 있는 새장들이 걸려 있었다.

울긋불긋한 옷들을 입은 하녀들이 층계에 앉아 있다가 대옥의 일행이
들어서자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마님, 대욱 아씨가 오셨습니다"

서너명이 앞을 다투어 염롱(문발의 일종)을 걷어 올리며 안에다
이뢰었다.

대옥이 방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백발이 성성한 노부인이 두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

"저분이 외할머니시로구나"

대옥이 금방 알아보고 큰절을 막 올리려는 순간 외할머니가 먼저
대옥을 끌어안으며 애간장이 저미는듯 대성통곡을 하였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눈물을 훔치지 않을수 없었다.

그제서야 대옥도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겨우 울음이 진정되자 대옥이 외할머니에게 큰절을 해 올렸다.

외할머니 사씨부인은 대옥에게 친척되는 부인들과 시녀들을
소개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