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는 "초엔고"의 행진, 그리고 눈앞에 다가온 미일무역전쟁에
대한 위기감으로 세계경제는 지금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런 격동의 와중에서 21세기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달성해야하는 한국경제
의 새로운 발전방향을 정립하는 것은 더욱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초대 과학기술처장관을 지낸 서정 김기형한국과학기술원 이사장은 이같은
세계경제의 혼란을 우리경제의 더없는 "호기"라고 강조하고 있다.

초엔고에 밀려나오는 일본자금과, 97년 중국으로의 반환을 앞둔 홍콩을
대체할 투자처를 찾고 있는 세계의 자본들을 끌어들이면 한국경제의 재도약
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김이사장은 이를위해 무엇보다 영종도공항건설을 서두르고 부근에 경제
특구를 만들어 사람과 자본의 자유로운 유통이 이뤄지도록 해야하며 "메이드
인 코리아"프로젝트에 곧바로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 프로젝트는 정부 학계 산업계가 총망라된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장기간동안 국내산업의 업종별 현황을 심층분석하고 바람직한
미래구도를 설정하자는 작업.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교수들이 중심이돼 미국제조업의 현황을
점검하고 비전을 제시한 분석리포트 "Made in America"와 그 영향으로
일본이 만들어낸 "Made in Japan"과 같은 것을 우리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고희의 나이(25년생)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는
김이사장은 라이온스클럽3650지구총재로 사회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본사 과학기술부 추창근차장이 그를 만나 우리경제와 과학기술의 나아갈
길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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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추창근 < 과학기술부 차장 > ]]]


-최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생산성본부(IPC)가 개최한 "선진사회
제조업의 미래상"을 주제로한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오셨지요.

어떤 회의였고 무슨 내용이 논의됐습니까.

<> 김이사장 =MIT의 IPC는 미국제조업이 침체되고 무역적자가 늘어나면서
그 원인과 대책을 분석하기 위해 지난91년 슬로안재단의 지원을 받아 설립
됐습니다.

공대와 경영대등의 교수들이 한데모여 미국과 다른나라 제조업의 강점및
단점을 비교연구하고 미국제조업의 미래전망수립, 신제품 개발과 디자인,
직장교육및 훈련등의 일을 주로 하고 있어요.

이번회의에는 존 더치 미CIA국장을 비롯한 각국의 석학 기업경영자 정부
관료등 3백여명이 참가해 세계일류기업의 장기목표, 미래산업사회의 문제점
에 대한 대책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했습니다.


-이사장께서는 이회의에서 미래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경제
지표를 제안,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 김이사장 =국가경제발전의 지표로 GNPEWS를 도입할 것과 세계교역에
플러스섬 개념을 적용하자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GNPEWS는 기존의 GNP(국민총생산)의 개념을 확장한 것으로 공해방지와
환경보호(GNE) 사회복지에 대한 지출(GNW) 선진사회에서의 자원봉사와 후발
개도국에 대한 지원비(GNS)를 모두 포괄하자는 것이지요.

단순히 소득만 따지지말고 선진사회의 특징을 나타내주는 다른 지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에 많은 참가자들이 공감합디다.

플러스섬개념은 국제교역의 관점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미국의
무역적자와 일본의 무역흑자를 합치면 영(제로)이 된다는 제로섬개념에서
미일간의 교역을 보고 있어요.

그러나 국제교역에서 경쟁과 협력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떨어질수 없는
관계이므로 서로에게 도움되는 길을 찾자는 것이 플러스섬개념입니다.

그러자면 계속적으로 부가가치를 높일수 있는 연구개발과 창의가 필요
하지요.

한일간의 경제협력도 이런 차원에서 풀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매우 독특한 발상입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됐습니까.

<> 김이사장 =WTO체제가 출범하면서 세계교역질서는 크게 바뀌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이런 변화의 조류에 계속 끌려다니기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
을 하게됐어요.

세계의 흐름을 앞장서 이끌어가려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도 미래산업사회에 대비,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전의 제시와 구체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 김이사장 ="메이드인코리아" 프로젝트를 서둘러 시작해야 합니다.
선진국의 장벽에 가로막히고 후발개도국의 추격에 위협받고 있는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을 한층 높일수 있는 길을 여기서 찾아야 합니다.

정부 학계 산업계가 한데 모여 우리제조업의 현황과 실태를 빠짐없이 심층
분석해 미래에 나아가야 할 길을 새로 설정해야 해요.

연구비는 통상산업부나 정보통신부 과학기술처같은 정부부처와 전경련같은
곳에서 대고 전문기술인 경영인 교수등으로 위원회를 만들어 연구를 맡기면
됩니다.

기간은 적어도 2~3년은 줘야 합니다. 그래야 졸속으로 흐르지 않고 믿을
만한 것이 나와요.


-이사장께서는 "초엔고"가 지속되고 있는 이런 기회에 일본 자본을 적극적
으로 유치하는 것이 우리 경제가 큰 도움을 받을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하고
계신데..

<> 김이사장 =일본기업들은 최근 몇년동안 적극적으로 해외투자에 나서고
있어요.

동남아국가들의 경제가 최근 몇년간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하고 있는 배경
에는 일본자금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중국 인도 태국등의 경우 전체 해외자본유입액의 50~60%가
일본자금일 정도입니다.

달러당 80엔대로 접어든 초엔고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기업들은 해외투자를
더욱 확대, 부품과 기계공장을 주변국가로 이전해 여기서 만든것을
사들이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어요.

지난번 미국회의에서 일본 스미토모그룹이 발표한 장기전략에 그런 움직임
이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들은 멀지않아 달러당 70엔선까지 간다고 보고 현재 90%인 국내매출을
5년안에 60%로 낮추고 해외매출을 4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아래 생산기지를
분산시킨다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대거 해외로 나갈 엔자금을 국내로 끌어들여 부품을 국산화
함으로써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해요.

엔고로 당장 일본에서 들여오는 부품원가가 20%나 올랐어요. 이래서는
경쟁이 안됩니다.


-아직 국민들의 반일감정이나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일본자금 유입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요.

일본기업들도 대한투자를 꺼려하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요.

<> 김이사장 =반일감정과 경제현실은 분명히 구분해야 됩니다. 그것을
혼동해서는 망합니다.

대만은 우리보다 10년이나 더 일본의 지배를 받았으나 일본기업유치에
훨씬 적극적입니다.

혈서 쓰는 것만이 애국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해요. 일본을 잘 이용할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또 인플레 때문에 외국자본 들어오는 것을 걱정하는 관료들이 있는데
쓸데없는 기우입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등에서 인플레가 문제된다고 들어본적 있습니까.


-일본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겠습니까.

<> 김이사장 =일본기업중에는 요즘 자국내의 공장을 동남아에 옮길
것인가, 한국으로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기업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들의 발길을 한국으로 끌어당기려면 금융 노동 기술 인력등 투자여건을
다른 나라보다 좋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엔자금을 끌어들이는 방법으로는 영종도국제공항 근처에 경제특구를 만드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의 자금과 사람이 자유롭게 드나들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 특구를 우리
경제가 도약하는 발판으로 삼아야 합니다.

초엔고를 이겨내기 위해 해외투자대상을 물색중인 일본자금과 97년 중국
으로 반환되는 홍콩의 돈을 끌어들이는데는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어요.

충분히 성공할 것으로 봅니다.


-과학기술 이야기 좀 여쭤보겠습니다. 지난67년 과기처를 직접 만들고
초대장관을 맡아 우리나라 과학기술행정의 기틀을 세웠는데 그때에 비해
요즘의 과학기술정책은 어떻습니까.

<> 김이사장 =과기처 설립초기에는 과학기술정책의 최우선을 투자를
늘리고 인재를 키우는데 두었습니다.

당시 GNP의 0.7%에 그쳤던 과학기술투자가 지난해 2.4%에 이르렀고 98년
까지는 4%선을 넘어서게 됩니다.

30년가까이 지나면서 과학기술수준이 많이 나아졌으나 아직 갈길은 멀어요.
투자의 절대규모가 미국의 10분의1, 일본의 7분의1밖에 안됩니다.

지금 8부능선에 도달했는데 마지막 고비가 남았어요. 전략분야를 골라
집중투자해 창조적 성과를 내는 방법으로 이 고비를 넘어야 선진국대열에
합류할수 있습니다.


-그때 설립한 과학원(현재 한국과학기술원)이 오늘날 한국의 과학기술을
이끌어가는 인재를 키워내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 김이사장 =지금도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중의 하나입니다. 당시 기존
대학을 육성하는 방법도 생각했었으나 대학에 돈을 주더라도 정부 의도대로
공과대학에 집중적으로 지원되기는 어려운 실정이었어요.

그래서 별도의 인재양성기관을 세우기로 했던 것입니다. 교수들의 월급을
국립대 교수의 3배쯤 주고 아파트도 제공했으며 학생들에게는 병역혜택도
줬어요.

대신 외국의 저명한 학술지에 논문이 실려야 박사학위를 주는등 관리는
매우 엄격하게 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최근 미국의 대학평가기관(ABET)으로부터 과학기술원이 미국
에서도 상위 10%이내에 드는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년만에 세계수준의 대학으로 성장했고 그동안 배출한 8천여명의 인재들이
지금 국내 주요기업과 연구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과학기술이나 과학기술인에 대한 경시풍조가
여전합니다.

정부내 고급공무원 가운데 이공계출신이 거의 없습니다. 반면 민간기업의
경우 임원의 절반가량을 이공계출신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시풍조가 과학기술발전을 가로막는 근본요인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 김이사장 =얼마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각료중 이공계는 9.0%, 3급이상의 고위공무원 6백11명중 기술직은
57명으로 9.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반직 공무원 가운데 기술직 비중이 19.3%나 돼 위로 올라갈수록 기술직이
설자리가 없어진다는 얘기예요.

정부도 인력구조에서 리스터럭처링이 필요합니다. 이문제는 대통령이
나서야 해결됩니다.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인식이 변해야 하죠. 과학기술계에서도 뿌리깊게
남아있는 양반주의를 없애야 합니다.

학위받고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의자에 앉아 일하려는 풍조가 널리 퍼져
있어요.

이래서는 안돼요. 현장제일주의가 자리잡아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현장이
학습장이고 첨단기술을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일본이 세계특허의 25%를 출원하는데 이것이 모두 기업의 생산현장에서
나와요.


-요즘 잇달아 발생하는 대형사고도 과학교육이 잘못된 탓이란 얘기가
있습니다.

<> 김이사장 =맞아요. 국민생활의 과학화가 안된 탓입니다. 매사를 과학적
으로 치밀하게 생각해서 행동한다면 어떻게 이런 사고가 나겠습니까.

근본적으로 과학교육을 혁신해야 합니다. 지난30년간 우리가 이룬 성과에
도취돼있을 것이 아니라 빨리 깨어나서 국민정신을 새로 진작시켜야 합니다.

< 정리=정건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