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파 부르는 중/반백년 지났는데/용마산 올라서니/사방이 남이로다/고향
은 내마음요/산천이 아닌 것을" 지난 89년 6월8일 창원공장에 내려온
이헌조 LG전자회장이 폐허같은 분규현장을 돌아본후 혼자 마산의
"용마산에 올라서" 지은 시이다.

우리나라 기업체 가운데 가장 노사관계가 안정돼있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LG전자도 최고경영자가 아픈 마음을 시 한수로 달래야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파업의 도화선이 됐던 LG전자 창원공장은 현재 "노사화합의
메카"로 알려져 국내외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사업장이다.

2개공장에서 냉장고 전자렌지등 주방용전자제품과 세탁기 청소기등
생활용전자제품을 생산해 지난해 1조8천5백억원의 매출실적을 올렸다.

공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노사협력의 결실이 물씬 풍겨온다.

건물 곳곳에 "리프 프로그(도약하는 개구리)95"" 3 by 3 ""4월은
고객의 달""기업윤리 위반사례를 접수합니다""헌혈에 다함께 참여합시다"등
생산성향상을 독려하고 생활질서를 강조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8천여 종업원들의 발걸음이 더없이 힘차고 손길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과격분규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89년 분규는 창사이래 최악의 경영위기였습니다.

근로자들은 거리로 뛰쳐나가 창원경찰서를 습격하는가하면 브라운관
베어링등을 바리케이드 삼아 한달이 넘게 기나긴 파업을 벌였지요"
창원1공장 최수택상무의 회고이다.

당시에는 공장전체가 그야말로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연초부터 벌어진 부분조업차질까지 합하면 실제 분규일수는 1백50일
정도에 달했다.

위장취업자들이 낀 파업지도부가 근로자들과 노조집행부에 밀려
세력이 약화되면서 6월16일 36일간의 파업은 끝났다.

두차례 분규를 통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LG전자는 분규를 교훈삼아
다시 일어섰다.

구자홍사장은 "노사관계 안정없이는 어떠한 성과도 기대할 수 없고
그동안 쌓아온 성과조차 물거품이 된다는 점을 노사 모두가 마음속
깊이 새기게 됐다"고 강조한다.

90년 이후 이회사의 노사관계는 안정의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된다.

경영진 간부는 물론 노조집행부 근로자 모두가 노사화합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이다.

90년 이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노사협력을 경영의 최우선과제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노사안정이 없으면 생존마저 위협받게 되므로 생산적이고
인간적인 노사관계를 정착시켜 나가야한다.

간부들이 먼저 권위의식을 버려야한다"고 밝히고 솔선수범으로 노사관계를
선도해나갔다.

그 자신이 노사협의회 때마다 항상 참석했다.

노조의 각종 행사도 직접 챙겼다.

93년엔 종속적 어감이 강한 "노사"대신 역할차이를 강조한 "노경"이란
신용어를 주창하기도 했다.

노사간에 인간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 흘린 땀이 하나하나 결실로
나타났다.

간부들의 "윗물맑기운동"이 뒤따랐다.

관리직 사원들이 넥타이를 풀고 정문에 나가 출근하는 사원들에게
인사하기 시작했다.

라인에서 근로자와 함께 생산에 참여했다.

사내 각 계층을 망라하는 간담회를 구성해 고충에 대한 상호이해의
폭을 넓혔다.

경영정보 공개기회도 자주 가졌다.

중간관리감독자들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직.반장들은 먼저 출근해 청소하고 기계를 돌렸다.

갈등과 투쟁의 고리를 끊기 위해 사측이 먼저 노력함으로써 조직내
불신의 벽이 허물어져 간 것이다.

이회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이같은 노력은 마침내 노조의 협력을
얻어내기에 이르렀다.

노조관계자는 "창원분규때 모회사에서 분규현장을 촬영해 가 사원교육에
사용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조합원들의 인식이 바뀌게됐다"고 귀띔한다.

유재섭위원장도 "노조가 있는 회사가 더 강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데
우리노조가 앞장서기로 결의했다"고 말한다.

노조간부가 기업이미지광고에 출연하고 제품판촉을 위해 길거리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창원공장은 지난 89년 분규의 도화선이었다는 오명을 씻기위해
다른 사업장보다 노사화합에 더 적극적이다.

지난 1월 노경팀원과 노조상근자들이 모여 현장사원들의 고충을
같이 찾아내자는 뜻에서 "드림팀"이라는 태스크포스를 만들었다.

지난 93년말 발족된 사원부인들의 모임인 "LG사랑회"는 회원이 이미
5백명이 넘었다.

이들은 "가사불이"라는 피킷을 들고 제품홍보활동을 펴는가하면
자선바자회를 열어 가정형편이 어려운 직원들을 돕고있다.

이런 노력으로 창원공장은 분규의 메카에서 화합의 메카로 거듭날
수 있었다.

지난 3월10일 삼천포 비치관광호텔에서 LG전자 창원1공장 노조간부수련대회
가 열렸다.

서울에서 내려온 유재섭위원장과 공장내 전간부가 참석했다.

정한식창원1지부장이 인사말을 했다.

"세계각국은 지금 경제전쟁이라는 제3차세계대전의 선전포고를
해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노사가 힘을 합쳐 헤쳐나가지 않으면 우리는 이 전쟁에서 참패하고
말것입니다" 다른회사 같으면 경영진이 할 얘기이다.

LG전자에는 이제 노사가 따로 없음을 실감케하는 대목이다.

"사방이 남이로다"는 이회장의 한탄은 어려웠던 옛시절의 기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 창원=권녕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