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운 < 한양대 명예교수 >


지하철공사가 한창이던 10여년전,어느 미국인 친구가 한 농담이 떠오른다.

"한국에서는 우선 도로에 문짝을 부착하는 기술부터 개발해야 할 것이오.
수도관을 묻는다고 한창 도로를 파헤치더니 깨끗이 포장하고, 또 전화선을
가설한다고 다시 파고, 그것이 끝나면 전선 가스공사등이 계속 이어지고,
이제는 또 다시 지하철을 파고 있으니 말이오. 이렇게 쑤시고 포장하는 일을
되풀이 하느니 차라리 도로에 문짝을 달아 필요할 때마다 그것을 여는게
좋지 않겠소"

한국의 대도시는 인구면에서는 세계적이지만 제대로 된 도시계획이 없어
수시로 필요할 때마다 파헤치고 묻고 포장하는 일을 되풀이 한다.

언젠가 바닷물이 완전히 빠지지 않은 모래로 고층아파트를 지은 일이
있었는데, 때로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높으신 분들에 의해 이런 일들이
무조건 강행되고 있다.

속담을 들어보자.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이다" "추우면
명주바지에도 오줌 눈다"등.

이는 어떤 수단으로라도 장기간의 안목없이 당장의 다급한 일만을
해결하려는 심사이다.

우리 풍토는 홍수와 가뭄, 삼한사온으로 상징되는 심한 가변성을 지녔다.

한세대 전만해도 우리나라 강의 모습은 집중호우 직후의 홍수, 아니면
넓은 백사장을 드러내놓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강은 서해안으로 흘러가는데 이와 같은 자연의 폭력에 정면으로
맞설수 없었던 우리의 조상은 주로 정비된 수리시설 보다는 강우에 의존하는
천수답농법을 일삼게 되었다.

홍수가 나 몇사람이 물에 빠져 죽을 정도가 되어야 모두가 모를 심는다.

가뭄에 시달리던 농부는 홍수에 오히려 신바람을 내는 것이다.

모는 대강만 심어도 거의 같은 수확을 얻는다.

이는 임시방편의 강한 적응력, 무계획성, 그리고 악명 높은 "괜찮아요"의
사고를 갖게 했다.

이에 곁들여 우리의 정신적 유산에는 조선시대의 가치관, 즉 "이도령식"의
속물.출세주의적 사고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마을이외의 중간도시가 없었다.

"망아지는 제주도로, 사람의 아이는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은 과거 아니면
농사외에 다른 선택이 없었던 사회상을 말하고 있다.

이때의 가치관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망국적인 병적 엘리트의식을 부추기고
있다.

고등고시는 조선시대의 과거와 다름없이 일단 합격하면 "나리"가 되고
퇴직한 뒤에도 깍듯한 전관대우를 받는다.

법은 항상 높은 사람에게만 유리하다.

때문에 명문대학을 졸업해 엘리트가 되지 못한 젊은이에게 심한 좌절감을
갖게 한다.

오늘날에는 조선시대의 단순한 사회구조와는 달리 수만개의 직종이 있으며
어떤 직업에도 무거운 책임감이 부여되어야 한다.

최근의 카오스이론에서는 나비효과를 중시한다.

오늘 서울 종로거리에서 날던 나비가 일으킨 바람이 내일 뉴욕에 폭풍우를
일으킬수 있다는 것이다.

파스칼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치만 낮았더라도 역사는 변했을 것이다"
라고 말했는데, 요즘 사회에 영향을 주는 사람은 권력가 대부호가 아니라
기술자 작업공 운전수등 오히려 평범한 시민들이며 어떤 자리에 있는 사람도
나비효과를 일으킬수 있다.

"잘 살아보세"가 아니라 모두가 저마다 직업에 긍지를 가질수 있는 "보람
있게 살아보세"가 되어야만 한다.

한국인의 심성도 바른 권력층의 노력과 건전한 사회적 풍조만 조성되면
결코 개혁할수 없는 것은 아니다.

꼼꼼함을 자랑하는 일본도 한때는 "싼것이오, 나쁜 것이오" "저패니스
타임"등의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을때가 있었다.

사회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어떤 민족도 새로운 역사상황에 적응하지 못했을때는 좌절했음을 역사는
증명한다.

우리가 살아남을 길은 오직 하나, 다양한 사회에 어울리는 의식을 갖는
일이다.

조선시대의 천수답식 사고와 이도령식 사고는 반드시 청산되어야만 한다.

의식개혁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민족생존을 위한 시급한 과제인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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