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소련,베트남과의 수교,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탈냉전의 시대흐름에
맞아떨어진 사건들이다.

한국외교의 지평을 넓힌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소위 북방외교가
거두어들인 결실이기도하다.

보통의 외교관에게는 흔치않은 굵직한 외교적변화의 중심에 있으면서
외교의 총사령탑으로서 북방외교결실의 현장을 지켜본 이상옥 전
외무부장관은 그런 점에서 커다란 복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통상압력이 거세지고 북한과의 핵협상이 지지부진한 현상황에서
36년간 외교일선에서 활동했던 전직외교총수의 경험담은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스스로 무색무취한 삶을 살아온 일벌레임을 인정하면서 집안을 잘
돌보지 않은 점이 후회가 된다는 전외무장관을 구기동 자택에서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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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직을 떠나신지 2년여가 되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가끔 골프도 치고 등산도 하고 지냅니다. 특별히 하는 일은 없고
민자당국책자문위원으로서 가끔 모임에 나가기도 하지요. 나머지
시간에는 회고록을 쓰기위해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민감한 외교사안도 포함되기때문에 한 5년후 출간할 계획으로 자료를
모으고 있어요. 내용은 주로 장관시절 이야기가 많을 것입니다"

-중국,베트남과의 수교,유엔가입등 장관시절에 한국외교사에 기록될 큰
일들을 많이 겪으셨는데 복을 많이 타고 나신 것 같습니다.

"어느 특정한 개인의 능력이나 행운 여하에 따라서 외교적인 큰일들이
이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개인적으로 좋은 일이라고는 생각합니다만 그런 일들은 시대적상황,
객관적인 여건과 외교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력,능력,열성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원론적으로 그 말씀이 맞는 것이지만 장관으로서 큰 일을 치룬 것은
일단 행운이라고 봐도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기는 합니다. 특히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사무관 시절부터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일이고 해서 더욱 그렇습니다. 50년대 말기에 외무부에는
방교국방교과라는 것이 있었는데 여기서 8-9년간 유엔을 담당했었습니다.

정부수립이후의 숙원사업이 43년만에 이루어졌고 개인적인 관심도
남달랐던 터라 장관으로서 한국의 유엔가입 현장에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교관생활동안 보람있었던 일도 많을 텐데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역시 유엔가입,중국 베트남과의 수교등 외교사에 길이 남을 일들을
하는데 기여를 했다는 점에 보람을 느낍니다.

APEC과 관련해서 91년 서울총회를 유치하고 중국 대만 홍콩을 가입시킨
것과 서울선언의 채택으로 APEC의 발전기반을 공고히 한 것도 보람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92년 7월 한국이 아세안의 완전한 대화상대국으로 받아들여져
아세안확대외무장관회의에 참가한것도 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려운 일도 많았을텐데요.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지요. 지내놓고 보니까 잘 다루었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동백림사건이었습니다.

68년당시 주독대사관 1등서기관으로 정무과장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이
사건으로 양국외교가 위기에 직면했었습니다. 당시 대사는 최덕신씨로
조국을 등지고 북한에 망명했다가 얼마전에 돌아가신 분입니다.

당시에는 대사의 친한 친구등이 그 사건에 연루돼 대사는 활동을
하기가 사실상 어려웠습니다.

외교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고 서울에서 훈령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시절에 대사대신 전면에 나설 수 밖에 없었고 양국간의
외교위기를 잘 넘기는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밖에 아쉬웠던 일들은 없습니까.

"직접 담당한 일은 아니었지만 동백림사건하고는 다른 의미에서
한국 외교에 큰 시련을 가져온 두가지 사건이 75년에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해 여름 페루 리마에서 열렸던 비동맹회의에서의 남북한 비동맹
동시가입실패이고 다른 하나는 가을에 열린 유엔총회에서 내용이 상충되는
서방측결의안과 공산측결의안이 동시에 통과된 것입니다.

당시 북한은 비동맹회의를 굉장히 중요한 외교무대로 생각하던 시절이었고
한국은 북한의 단독가입을 저지한다는 전술적인 고려하에서 시도했지만
실패했지요. 유엔총회에서 결의안통과도 아쉬운 일이었어요.

결과적으로 당시 김동조장관이 몇달후에 장관직을 물러나게됐고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것 아니냐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비동맹가입문제도 그렇고 외교라는 것이 큰 국제정세의 흐름을 잘
파악해서 적절히 대응해나가야지 큰 흐름을 제대로 타지 못하는
경직된 외교를 하게되면 결과는 실패로 끝나기 마련이라는 교훈을
얻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어느 직업이나 바람직한 상이 있게 마련인데 외교관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외교관이란 외국에 나가서 국가이익을 지키고 신장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애국심이 제일 강해야한다고 봅니다. 또 꾸준히
노력하고 국제정세의 흐름을 늘 공부하고 연구하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외교관으로서 갖추어야할 덕목을 말씀해주셨는데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개인적으로는 이상적인 외교관은 못된다고 봅니다. 외교관들은
일반적으로 본부근무보다는 해외근무를 많이 하게되는데 나는 36년
생활중 14년정도만 해외근무를 했어요.

예외적인 외교관에 속하지요. 또 너무 일에 집착하다보니까 개인생활을
너무 못해서 집사람한테 요즘도 늘 미안하게 생각해요.

대개 외교관의 부인이 되면 해외근무중에 여행도 많이 하게되는데
집사람은 여행도 많이 못했어요.

지내놓고 보니까 그렇게 한 것이 좋았던 일인지 잘 모르겠는데 워싱턴
에서 정무참사관을 지낼때만해도 거의 다른 지역 여행을 못했어요.

토요일과 일요일이 휴일인데도 늘 사무실에 나가서 본부에서 온 전문을
체크하고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를 봐야만 안심이 되곤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집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데 혼자서 일하는 것처럼
하느냐고 불만을 표시하곤 했지요.

외교관이라는 직업에는 충실했지만 가정을 가진 평범한 개인으로서의
생활은 보람있게 못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일도 열심히 하고
개인생활도 잘 하는 것이 크게 봐서 바람직스럽다고 봅니다"

-보람도 있었고 아쉬운 점도 있었던 외교관생활을 시작하게된 특별한
동기가 있습니까.

"특별한 동기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대학시절 정치학과에서
국제정치학을 배우면서 외교에 관심을 가지게됐고 대학교 2학년때부터
시작한 합동통신외신부기자생활이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기자생활을 한 3년하다보니까 국제뉴스를 많이
접하게됐고 자연스럽게 외교관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4학년때인
56년에 시험을 쳐서 합격했습니다"

-아무래도 무슨 특별한 계기는 있었을 텐데요.

"글쎄요. 굳이 얘기한다면 당시 내가 번역한 기사가운데 아이젠하워
미국대통령의 연두교서나 덜레스국무장관의 주례회견내용등이 있었는데
번역을 하면서 덜레스국무장관의 기자회견같은 것은 꼭 한번 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특별한 계기라고 할 수는 있겠지요"

-처음부터 장관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신 거군요.

"그때야 어디 그런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저 졸업하면 외무부에 가야
되겠다는 생각만 했지요"

-요즘은 자녀교육문제등 때문에 해외근무를 기피하는 경향도 있는데
자녀교육에 어려움은 없으셨습니까.

"다소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당시만해도 해외에서 한 2년근무하고 본부
에서 3-4년근무하는 시절이었고 또 이상하게 해외근무를 많이 하지않았기
때문에 별 어려움은 없었어요.

아이들의 대학교육만큼은 한국에서 받아야한다는 소신도 있고해서
아들은 연세대 딸은 이화여대를 보냈어요"

-지나온 세월을 얘기하셨는데 최근의 외교현안인 북한핵문제나 점증하는
미국의 통상압력등에 대해서 원로로서 한말씀 해주시지요.

"공직에서 물러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태인데 괜히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또 현재는 일반인과 다를게 별로 없어요.
특별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하니까요. 그렇지만 일반론
으로서의 외교관은 말할 수 있지요.

과거보다는 외교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업무량이 많아지고 복잡
해졌습니다.

또 우리가 지위가 향상된만큼 국제사회에서 해야할 역할들이 많아지니까
외교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사회가 민주화되고 언로가 많이 열러서 일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사안의 모든 것을 국민한테 알리고 여론의 여과과정을 겪어야 하고
국민적인 이해와 진실이라는 기반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민주화시대의
외교라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외교란 속성상 일정한 과정을 거치기까지는
기밀이 유지되야합니다.

기밀을 유지하지 못하면 상대방의 신뢰를 얻기가 어렵기때문에 정부는
기밀을 지켜가면서 외교를 해야하고 언론은 외교의 속성을 이해하고
교섭과정의 자초지종을 전부 공개해서는 안됩니다.

일정한 단계까지는 기밀이 유지돼야한다는 점을 언론이 이해하고
다루어줘야 합니다.

다시말해서 외교의 방향이 국가이익하고 맞는지 여부를 따지는 논의는
활성화되고 활발히 이루어져야하지만 특정한 외교사안의 경우 협상전략에
관한 문제까지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하면 외교를 제대로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막연한 예기처럼 들리겠지만 어려운 외교현안이 눈앞에 있을때 외교의
속성을 이해하는 이해와 지지가 있어야 합니다"

[대담=김형수국제1부장]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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