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원은 지난 4일 외화대출제도의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개편 내용은 대기업의 시설재도입용 외화 융자비율을 종전의 소요자금의
90%에서 70%로 줄이는 한편 은행들은 외화대출 재원의 50% 이상을 만기가
3년 이상인 중장기 자금으로 직접 조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당국이 외화대출의 융자비율 축소를 통해 노리는 효과는 분명하다.

대기업의 시설투자를 억제함으로써 경기과열을 예방하고 지난 4월말
현재 52억달러에 달하는 경상수지 적자를 줄여보자는 것이다.

외화대출 금리가 국내 금리수준에 비해 상당히 낮기 때문에 기업들은
대규모 설비투자의 재원으로 외화대출을 선호한 것이 사실이다.

외화대출의 융자비율이 낮아지면 기업들이 선택할수 있는 길은
두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정책당국이 바라는대로 설비투자규모를 줄이거나 투자시기를
늦추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또 다른 돈줄을 찾아보는 것이다.

자체신용이 좋은 대기업들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전환사채(CB)나
주식예탁증서(DR)를 발행하는 직접금융을 이용할수 있다.

이 경우 조달금리도 낮고 상환만기가 긴 장기자금을 조달할수 있으며
잘하면 기업신용도 높일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자금조달규모나 시기에
불확실성이 많고 최근 국제 금융시장도 유동적인 상황이다.

게다가 통화당국의 규제로 해외 직접금융을 통한 자금조달을 허가받는
데도 경쟁이 치열한 실정이다.

만일 기업들이 설비투자 자금을 국내 자금시장에서 조달할 경우
시중금리의 상승및 자금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오는 7월부터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가 확대됨에 따라 해외자금이
유입될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 지자체 선거때 선거자금이 많이 풀릴
경우 통화관라에 미칠 압력은 상당히 커질 가능성이 있다.

정책당국은 외국인 주식투자한도가 확대되었지만 당장 해외 자금이
몰려올 가능성이 크지 않고 선거법개정으로 선거자금 때문에 통화관리가
교란될 염려도 많지 않다며 애써 낙관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선행 경기지표가 계속 하락하고 있고 주가지수도
연일 최고치를 보임에 따라 미국으로 환류된 단기자금이 언제 국내
증시로 몰려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또한 투자조정의 부담을 전적으로 민간부문에 떠넘기는 것도 재고해야
한다고 본다.

민간기업은 설비투자 확대와 장래의 시장점율을 연결시켜 투자시기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공공부문은 고속철도,영종도신공항 등의 대형 사회간접자본
투자외에도 지하철공사 등을 무분별하게 벌여놓아 부실위험까지
낳고 있다.

경기진정과 국제수지방어를 위해 원화절상을 어느정도 방조한데
이어 이번에는 융자비율 축소라는 양적인 규제조치를 내린 정책취지는
이해할수 있다.

그러나 시행시기가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으며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를 서둘러 확대한데다 선거뒤의 통화관리 부담까지 겹쳐 자칫
국내 금융시장이 교란될까 걱정된다.

경제정책은 내용 못지 않게 시기가 중요하다.

이번 경우에도 정치적인 고려때문에 적절한 시기를 놓친 나머지
그 부담이 하반기 경제운용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정책당국은
미리 대비해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