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부터 대형사고가 자주 터지니까 민심이 불안정해지고 있다.

한강에 건설되고 있던 신행주대교가 어느날 갑자기 주저앉아 온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부산에서는 달리던 열차가 철로가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탈선해서 엄청난 인명피해를 내는 대형사고가 뒤를 이었다.

목포 근처에선 여객기가 무리한 착륙도중 산을 들이받았는가 하면 정원을
훨씬 초과해서 승객을 태운데다 악천후를 무릅쓰고 가던 여객선이 파도에
휘말려 바다에 가라앉고 말았다.

지상에서는 경인 LNG 주배관공사외 부실시공이 문제되었다.

그리고 서울독산동 한 호텔신축공사장의 안전대책없는 땅파기때문에 인근
건물이 두차례에 걸쳐 붕괴됐다.

근래의 사고만해도 육.해.공.지하에서 번갈아 나타나고 있다.

서울의 성수대교붕괴를 비롯해서 지방에서 크고 작은 다리사고가 이어지고
충주호에서는 무리하게 유람선을 운행하다가 아까운 인명을 고기밥으로
만들었다.

땅속을 지나는 까닭에 그렇지 않아도 불안해하는 마당에 연달아 발생하는
지하철사고는 말할 필요가 없다.

서울에 이어 대구에서도 통신케이블에 화재가 발생했다.

작년12월 서울마포와 금년4월 대구 지하철공사장에서의 도시가스 폭발현장
은 폭격맞은 현장 그것이었다.

대형사고는 시끄러워야만 대형이 아니다.

사회적 비용을 크게 만들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사고가 수없이 많다.

불량식품 의료사고 산업재해 자동차사고 환경오염등 발생해도 쉬쉬하며
덮어두는 경우에서부터 사법제도의 운영이나 교육과 사회생활에서의 각종
차별과 마찰등 무형적인 것이라서 별로 주목을 받지않고 넘어가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불합리성 불공평성 억울함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있다.

모두 다 사회체제라는 커다란 자산이 훼손됨으로 해서 엄청난 손실을
자초하고 있는 확실한 현장이다.

또한 오랜 세월 수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해놓고 그것이 누적된 자산을
순식간에 날리는걸 별로 아까워 할줄 모른다.

예를들어 매년 식목일에 나무를 부지런히 심지만 산불을 내 태워버리는
나무는 더 많을 것이다.

창업자금은 부지런히 대주고 그결과 나타난 중소기업이 계속 성장할수
있는 여건조성에는 별로 관심 없다.

100년 살수 있는 주택을 건설하기 보단 10년마다 재개발하는걸 재미있어
한다.

결국 GNP는 올라가도 생활수준은 올릴수 없는 기본원인이 된다.

우리는 대형사고가 날때마다 흥분하고 피상적 원인분석을 하면서 책임자를
찾아 문책하면 마무리되는 것으로 알고 또 다른 관심사를 찾아 떠나는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나마 눈에 보이는 대형사고의 경우이지 눈에 잘 안보이게 진행되는
인적.물적 자산에의 피해에는 상황파악 조차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이러한 모든 사고는 관련기관간의 긴밀한 협조와 철저한 감시장치가 없이
대충대충 시행했던 "과거의 건설공사", "제도정립"과 책임의식 별로없이
관행에 의거해서 과거식대로 운영하는 "오늘의 시설관리방식"과 "제도운영
방식"에 그 직접 원인을 찾을수 있을 것이다.

사고원인은 따지고 보면 큰데서 생긴게 아니다.

조그마한 부주의들이 쌓인 결과일 뿐이다.

사회관리체제가 이런 상황이라면 멀쩡해 보이는 분당 일산 평촌 지구의
대형아파트나 수십층짜리 건물에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자신이 없다.

눈에 안보이는 사회체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는데 이와같은 부문에서의
사고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물질적 인적으로 볼때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우리사회가 소득이 높아가고, 국제화과정에서 인간존중의 가치관이 확산
되면서 한사람 한사람이 지배하는 자산의 규모는 커지고, 상호관계를 맺는
대상이 확대되는등 주변환경이 선진국형으로 변해가는데도 선진국과는 전혀
다른 행동패턴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들의 경우 무슨 일이든 준비는 길고 철저하게, 그러나 실천은 확실
하고 빠르게 진행시키는게 사회에 이익이 된다는 진리를 터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준비없이 지내다가 일이 터지면 만사제쳐놓고 온 사회가
거기에 매달리면 비용은 비용대로 들고, 한차례 소용돌이가 끝나보아야
해결책은 땜질정책 사후해결사우대 마당발출세로 특정지어진다.

결국 한국사회는 바쁘기만 하지 지내놓고 보면 남는게 없다.

투자는 되는데 부는 축적이 안되고, 준비부족한 상태에서 해결해야할
문제는 더욱 복잡하고 다양하니 모든게 "적당주의"로 흐를수 밖에 없고,
자기가 책임있는 위치에 있을때 가까운 주변의 위기를 넘기고 자리를 뜨면
그만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에 협조성부족 미래의식부족의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미래가 불확실하고 타인을 믿을수 없으니 발빠르게 기회잡는게 최고의
생존전략이 된다.

전문화는 공염불이 되고 보따리장사 기질이 온 사회에 넘친다.

빨리빨리 외형으로 성장하는 것에 대한 고평가와 물질우선주의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를 이만큼 발전시킨 원동력이라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되돌아볼 시기가 된 듯하다.

수요자가 좀더 까다로워지고, 모든 직업인들이 최소한 자기의 사회적 책임
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며, 눈감고 아웅하는, 즉 현실에 맞지 않는
요금으로 운영토록 하는 대신에 인전규정위반을 허용하는 식의 "적당주의를
서로 주고 받는 제도운영이나 관행"을 뿌리뽑는 일이 시급한 과제가 된다.

사태수습도 직접원인이나 피상적으로 찾아내고 책임자를 문책하는식의
대증치료법이 아니라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를 뜯어고치고 가격을 현실화
하면서 개별경제주체들의 책임의식제고와 상호견제에 의존하는 시스템적
접근 방식이 아쉽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