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천안고교 14회 졸업생들이다.

서울에서 중학교를 나온 내가 천안으로 진학한것은 가정사정 때문이었고,
중학교 친구가 없어서 오는 소외감은 그 뒤 나 자신에게 친구를 사귀는데
많은 영향이 것 같다.

어떤 친구는 재수를 해서 들어오기도 했고,어떤 친구는 검정고시를 거쳐
입학하기도 했으며, 또 어떤 친구는 중학교때 소위 "놀았던"경력 때문에
소외감이 있었다.

우리는 그러한 가운데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이해하여 주는
친구로서 우정을 키워왔다.

그 시절 농구와 탁구를 특히 즐기며 이따금씩 교외로 자전거 하이킹도
떠났고, 천안 문화원에서 하는 영어회화반에 참여한 것은 여학생을 만나는
호기심도 반쯤은 작용 했으리라.

시험이 끝날 때마다 "마라톤 약국"을 중심으로 모였던 우리는 큰 형수께서
끊여주는 라면으로 배를 채우며 불투명한 미래를 대해 이야기 하곤 했다.

이제 고등학교를 나온지 30여년이 지났고 그 자리에는 우리의 2세들이
자리하고 있다.

여수에서 20여년간을 생활하다보니 우리 친구들은 보통 내가 고향을 다녀
가는 기회에 모이곤 한다.

그동안 제각각 알차고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바쁜 세계속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다 보니 자주 모임도 가지지 못하지만 일년에 한번쯤은
온 가족이 모여서 그동안의 회포를 풀기도 한다.

지난 여름에는 지리산 쌍계사 자락에서 좋은 추억을 말들었다.

계곡의 깊은 물에 갑자기 빠지면서 잃어버린 안경을 찾느라 1박2일을
고생하던 일, "홍주"에 맞이 가서 횡설수설 하던 일, 잠시도 쉬지않고
구수한 농담을 토해내던 추억들..

이 글을 쓰는 사람은 (주)한화에서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고, 한배흠(천안 피어선 안경 대표)은 눈나쁜 사람에게 환한
희망을 주는 보람으로 살고 있다.

정광성은 기업체에서 근무를 하다가 모교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것이 좋다고
진로를 바꿨으며, 맹두호(서울 도봉구 쌍문동,국교교사)는 "한울타리 모임"
에 참여하면서 가장 모범된 가족으로 이따금씩 매스컴에 등장하기도 한다.

조규행은 대전의 한영약품에 근무하며 구수한 입담과 팔망미남으로써
우리 모임의 활력소 역할을 하며, 조긍호(건축사무소 사우 대표)는 오랫동안
해외근무에 종지부를 찍고 고향에서 역사적인 건축물을 남기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친구들이 어떠한 기준으로 성공하고 실패한 인생이라고 구분할수 있을까?

우리 친구들은 "인생은 긴 마라톤이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짧은듯 하면서 무한히 긴 인생.

우리의 고귀한 친구들이 항상 건강하고 화목한 생활을 영위하며 사회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 아닐까.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