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촌이 그 늙고 초라한 스님하고는 어떤 대화도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절간을 나와 동네 거리로 들어섰다.

우촌은 방금 절간에서 인간이 늙어질때 얼마나 불쌍한 모습을 하게
되는가를 똑똑히 본 느낌이었다.

불교와 같은 종교의 힘도 사람이 늙어서 쪼그라지는 것을 막아주지는
못하지 않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영원히 늙지 않는 신선이 되기를 갈망하는지도
몰랐다.

우촌은 갑자기 인생이 허무하게 여겨져 어디 술집에라도 들어가서
술이나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았다.

마침 적당한 술집이 눈에 띄어 그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어떤 사람이
안쪽 구석 술상머리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 다가오며 소리를
높였다.

"이런 데서 만나다니, 이런 데서 만나다니"

그리고는, 허허허, 너털웃음까지 웃어제쳤다.

우촌이 놀라서 쳐다보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장안에서 골동품장사를 하던 친구 냉자홍이 아닌가.

우촌이 장안에서 과거준비를 하는 동안 서로 알게 되어 막역하게
지내온 터였다.

우촌이 볼때 냉자홍은 비록 골동품장사를 하는 행상이지만 장차
큰 일을 해낼 인물로 여겨졌다.

자홍 역시 우촌이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고 친밀하게 지내었다.

"자홍 자네가 언제 여기로 왔나? 난 통 모르고 있었네"

우촌이 반가운 마음에 활짝 웃으며 자홍의 손을 덥석 잡았다.

술집으로 들어설 때만 해도 마음이 울적하였는데 이렇게 친구를 만나자
마자 기분이 좋아지다니.

"지난 겨울에 고향에 들렀다가 장안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여기 사는
친구에게 전할 말이 있어 왔다가 며칠 묵고 있는 걸세.

우촌형을 이 고장에서 이렇게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지금쯤 부사나리로 떵떵거리고 있어야 할 사람이"

자홍은 우촌의 형색을 새삼 유심히 살피며 자기 술상으로 끌어다
앉혔다.

"어이, 여기 술이랑 안주 더 가져오라구"

자홍이 큰 소리로 주모를 불러 주문하였다.

우촌과 자홍은 권커니 자커니 술잔을 기울여가며 그 동안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느라고 날이 저무는 줄도 몰랐다.

"요즘 새로운 장안소식 들은 것 없나?"

우촌이 궁금한 기색을 띠며 묻자 자홍이 어떤 소식을 전해줄까 하고
생각을 더듬었다.

"특별히 새로운 소식은 못 들었고 자네 친척 가씨댁에 좀 이상한
일들이 있었던 모양이네"

"친척이라니. 장안에는 친척이 없네"

"아, 그런가. 자네와 같은 성씨라서 그만"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