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촌은 대옥 가르치는 일을 쉬게 되자 무료함을 달랠겸 해서 날씨가
화창한 날이면 종종 산책을 나가곤 하였다.

그 날도 산책을 나왔다가 아예 성문밖으로 나가보았다.

시골의 한가롭고 고즈넉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고향땅 호주의 풍경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 그 땅에서 가장도
없이 고생하고 있을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당장이라도 고향땅으로 달려가고 싶은 심정일 뿐이었다.

특히 교행의 몸이 그리웠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시기로 황제로부터 파면을 당한 마음의 상처가
아물기 전까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작정을 한 우촌이었다.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그 상처를 달랠 수도 있을텐데 왜 혼자
유랑을 해야 하는지 우촌 자신도 어떤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원래 우촌의 핏속에 방랑벽이 잠재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들판길을 얼마 걸어가니 맑은 시냇물과 그 시내를 끼고 있는 구릉이
나타났다.

그 구릉은 대나무 숲으로 울창하였는데,그 숲 사이로 절간지붕이 언뜻
보였다.

우촌은 저 절간으로 한번 가보자 하고 발길을 그 쪽으로 옮겼다.

지통사라는 현판이 걸린 그 절간은 기둥이 기울고 담벽이 허물어져
퇴락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양쪽 기둥에는 어디나처럼 대련 글귀가 붙어 있었다.

우촌이 먼저 왼쪽 기둥의 글귀를 읽어보았다.

"넉넉할 적에는 아낄 줄을 모르다가(신후유여망축수)"

우촌의 가슴으로 어떤 아픔이 지나갔다.

우촌은 넉넉할 때에도 허랑방탕하게 지낸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잘 관리해왔다고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출세의 가도를 달릴때 더욱 자기관리를 철저히 했다면 이런 수모는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특히 동료들과 부하들,상관들,그런 인간관계에서 좀 더 따뜻한 정을
나누었더라면. 그 다음 우촌이 오른쪽 기둥의 글귀를 읽어보았다.

"앞길이 막혀서야 헛되이 후회하네(안전무로상회두)"

우촌은 앞길이 막혀 있는 자신의 신세를 그대로 읊고 있는 구절인
것만 같아 이 절의 주지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우촌이 절간 마당으로 들어서 둘러보니 늙고 초췌한 어느 스님이
솥에다 죽을 쑤고 있었다.

우촌이 저 스님이 주지인가 보다 하고 말을 걸어보니 그 스님은
귀가 먹어 잘 듣지도 못하였다.

게다가 눈까지 멀어 앞을 보지도 못하였다.

입은 말라비틀어진 오이처럼 되어 말도 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