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나라를 막론하고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경제활동이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을 흔히 "지하경제" "숨은경제" 또는 "불법경제행위"라고
표현한다.

지하경제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서 우리는 흔히 "지하경제는 나쁘다,따라서
없어져야 한다"는 식으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법에 저촉되는 경제활동은 근절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하경제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는지 모른다.

예를 들어 어떤 제도가 경제적 합리성을 추구하는데 장애요인이 된다면
그것을 적용받는 국민들은 그러한 제도에서 벗어나려고 애쓸것이며 또
어느 누구도 그것을 막을수 없을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선택의 자유"라는 저서에서 "법률이나 제도가
자기의 가치 추구를 방해하게 되면 사람들은 이를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시작한다.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거나 법을 어기려 할 것이며,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그 나라에서 도망치려 한다"고 피력하였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라는 말이 있듯이 세율이 높으면 절세 혹은
탈세를 하고자 하는 동기가 생기게 되고 법을 집행하는 당국자는
이를 막기 위해 행정력을 동원하게 되며 국민은 될수 있으면 거기에서
빠져 나가려 함으로써 국민과 정부의 비협조적 경기( uncooperative
game )가 유발된다.

한 나라의 지하경제규모는 법률이나 제도(세제)의 모순과 국민의
자기중심적 판단의 결과라고 볼수 있으며 시장실패와 정부실패의
적분이라 표현할수도 있다.

그러나 도덕적 기준이 아닌 경제적 측면에서만 볼때 지하경제를
전적으로 악이라고 치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감 저하,세부담의 공정성과 소득분배의 왜곡,자원의
비효율적 배분과 생산성 저하,사회비리의 조장,통계의 정확성 저하및
경제정책의 교란등 지하경제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는 실로 심각하다.

이러한 심각한 사회적 비용하에서 존재하고 있는 지하경제의 긍정적
존재가치를 생각해 볼 필요가있다.

여러가지 궁정적 측면이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부적절한
법률이나 제도(세제)로부터의 완충역할이다.

지하경제는 잘못된 법률이나 제도에 의해 야기되는 각종 의사결정의
왜곡(정부실패)및 사회적 불안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수
있다.

다시 말하면 지하경제는 잘못된 제도나 규제와 싸우는 시민의 지혜에서
나온 산물이라고 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하경제규모가 크고 작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지하경제의 규모를 추정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할수 있다.

하나는 통화지표에 의한 수정이고 다른 하나는 "소득-지출 격차"분석방법등
의 비통화자료에 의한 추정방법이다.

통화자료에 의한 추정방법은 총통화(M2)에서 현금통화(민간보유화폐액)가
차지하는 비율의 변화추이를 살펴봄으로써 지하경제규모를 추정하는
것이다.

"소득-지출 격차"분석방법은 소득은 가급적 숨기려는 속성이 있는데
반해 소비행위는 감출 필요가 적다는 점에 착안하여 지출규모를
기준으로 소득수준을 역산하여 이를 세무당국에 신고한 소득규모와
비교함으로써 지하경제규모를 추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하경제규모의 추정은 이용된 추정방법과 학자들의 분석목적에
따라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러학자들에 의해 추정된 지하경제규모는 작게는
10%(GNP대비)에서 크게는 50%로 집계되었다.

또 미국의 지하경제규모는 2.2%에서 41.6%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같이 지하경제규모를 분석한 결과는 여러가지 제한된 조건하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므로 그 추정치가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금융실명제를 지하경제와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먼저 지하경제의
생성원인부터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지하경제의 생성원인으로 정부의 규제및 조세부과 등을 들수 있으나
보다 중요한 근본원인은 정부와 국민간에 상존할 수 밖에 없는 정보의
비대칭때문이다.

금융실명제의 실시는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을 제도적으로 완화시킴으로써
국민경제의 효율성을 제고시키고 나아가 지하경제 양성화의 필요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조치라 할수 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의 실시가 바로 지하경제의 양성화와 직결되리라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한 나라의 경제는 지하경제라는 호흡기를 통해 숨을 쉰다는 이야기도 있다.

인간의 신체구조에 따라 적절한 호흡기가 필요하듯이 한 나라의
적절한 지하경제규모도 그 나라의 경제환경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지하경제는 가능한한 줄여나가야 한다"라는 명제가
당위성이 있다면 세정개혁을 통한 관리.감독체계의 확립및 세무조사강화를
통한 탈세자의 적발및 엄중한 처벌 등이 한 방편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방법은 세제의 간소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간소하다는 의미는 세제를 운용하는 공무원이나 납세자가 별지장을
받지않고 운영될 수 있을 만큼 간편하고 분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납세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세법을 고쳐나가야
할 것이며 현행 세제상의 각종 특례제도를 축소 혹은 폐지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물론 국민의 납세도의심이 앙양되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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