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여년간 한국 재계는 엄청난 풍상과 변화를 겪었다.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커졌고 주력산업도 크게 변해왔다. 자연히 한국재계를
리드하는 간판기업들도 바뀌어왔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매출액 증가다.

지난 65년 국내 상위100대 기업의 매출총액은 2,400억원.이것이
지난 93년에는 209조5,000억원(능률협회집계기준)으로 불어났다.

30년이 채 못되는 사이에 873배가 늘어난 것이다.

이 기간중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71배(105달러에서 7,466달러)성장한
것에 비춰보면 기업들의 성장세가 얼마나 고속이었는지를 가늠케 한다.

그러나 이같은 재계의 총량적 성장사 이면에서는 수많은 기업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지난 65년 국내기업순위 1위에 오른이래 70년대말까지 줄곧 재계선두를
달렸던 동명목재가 80년초 주저앉고 만 것이 대표적 사례다.

제당 제분 방직을 일컫는 3백산업의 퇴조가 초창기 기업들의 몰락을
부채질한 측면도 있다.

65년당시 매출액이 20억5,000만원으로 재계순위 2위였던 금성방직을
비롯 판본방적(3위) 조선방직(14위) 대전방직(16위)등은 오늘날
이름조차 찾아볼수 없다.

그렇지만 이들업종에 있던 기업인들이 모두 몰락한 것은 아니다.

제일제당의 이병철,금성방직의 김성곤,락희화학의 구인회씨등은 이사업을
모체로 산업흐름에 맞춘 사업다각화에 과감히 나섰고 이들이 일군 기업들은
현재까지도 국내재계의 리더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렇게보면 기업의 명멸엔 타이밍을 맞춘 사업구조 전환등 변신여부가
결정적 잣대로 작용해왔다고 볼수있다.

60년대 재계 선두를 달렸던 천우사(전택보) 화신(박흥식) 삼호(정재호)
등이 쓰러져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대기업의 몰락에는 정부와의 정치적 역학관계가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 경우도 없지않다.

80년대 국제(양정모) 명성(김철호)등이 그 대표적 기업들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 기업을 "정리"하면서 부실기업 정리조치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기실 명성등의 경우를 보면 단기간내에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체력"에
걸맞지않게 은행돈등 금융자금을 무리하게 끌어쓰는등 지나치게 거품을
일으킨 측면도 없지않았다.

지난 30여년의 한국기업사는 기업이 긴 호흡으로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을 꿰는 오너의 안목과 함께 "절도있는"경영력이
요체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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