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은 요즈음의 대학캠퍼스는 정말 아름답다.

신록이 우거진 사이사이로 철쭉꽃들이 만발하여 초록비단에 붉은 꽃을
수놓은 한폭의 그림보다도 훨씬 더 싱그럽게 아름답다.

대학교수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이 누릴수 있는 축복가운데 하나는 이처럼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일할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공무원들이나 회사원들은 아마 대부분 콘크리트로 지은 크고 높은 대형
건물속에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도심의 고층건물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창밖을 내다보면 남산이나
북한산, 아니면 한강변과 같은 멀리 보이는 풍경을 즐길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의 캠퍼스에서처럼 직접 그 풍경속으로 들어가 거닐기도하고
숨쉬기도 하면서 하루의 일과를 수행해 나갈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학교수들은 이처럼 아름다운 캠퍼스의 봄풍경을
오랫동안 즐기지 못하고 지내왔었다.

해방후 반세기동안의 정치적 소용돌이속에서 대학의 캠퍼스에는 항상
태풍이 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후의 혼란기에서 좌우익 학생조직의 대결, 6.25전쟁, 4.18과 4.19,
5.16과 5.18, 6.3데모와 6.29등으로 이어진 정치적 격동기에 대학에 몸담아
왔던 대학교수들은 4월과 5월을 "잔인한 달"로 여길만큼 캠퍼스의 봄을
잊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에 직장을 가진 교수들이 캠퍼스의 봄을 풍경으로 느끼고
감상하면서 일할수 있게 된것은 불과 한 두해 전부터인 것이다.

요즘의 대학캠퍼스에서는 최루탄과 화염병이 사라졌으며 더이상 고성능
마이크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제 학생들은 강의실을 가득 메우고 있고 밤 늦게까지 도서관의 불을
밝히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신록이 우거지고 철쭉이 만개한 캠퍼스의 여기저기에서는 학생들이
한가롭게 대화를 하고 책을 읽거나 기타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농구를 하거나 테니스를 치는 학생들과 족구를 하는 학생들도 모두
싱그러운 젊음을 만끽하고 있다.

세계에서도 열손가락안에 든다는 인구 1,000만명이 넘는 초거대도시인
서울에서 이만큼 아름다운 경관속에서 근무하는 축복을 누리는 직업인은
드물 것이다.

시민들을 정문보다는 주로 뒷문이나 쪽문으로 드나들게하는 정부청사들은
매우 위압적인 위용을 자랑하고 있지만, 민원인들이나 그 건물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에게 나무와 꽃과 벤치가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지못한다.

세계 어느나라의 일류호텔이나 일류백화점에 못지않게 화려하게 꾸며진
서울의 호텔과 백화점에 가 보아도 기껏해야 인공폭포나 인공물레방아가
어느 한구석에 있을 뿐, 자그마한 정원조차 찾아볼수 없다.

하늘을 찌를듯 높이 솟은 큰 기업체들의 건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대학에는 나무가 있고 꽃이 있고 새들이 울고 젊은 학생들이 공부
하고 축제도 벌이는 아름다운 캠퍼스가 있다.

그리고 대학캠퍼스는 이웃 주민들과 시민들 누구에게도 항상 그 문이 열려
있다.

요즘은 주차사정때문에 영업용차량이 아닌 자가용차들의 출입은 어느정도
통제하고 있지만,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들어오는 사람이면 어린이건 동네
할머니건 누구나 캠퍼스를 자유롭게 드나들수 있고 캠퍼스의 아름다운
경관을 즐길수 있다.

심지어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신랑이 사진을
찍고 가기도 한다.

캠퍼스를 지키는 수위아저씨들이 있지만 걸어서 들어오는 어떤 사람에게도
신분증을 보자거나 무슨 용무로 왔느냐고 물어보는 일도 없다.

대학캠퍼스는 사람들을 위압하는 권력이나 돈을 벌려는 탐욕으로 채워진
"닫힌공간"이 아니라 아름다운 경관과 배움을 찾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열린공간"이다.

연구실 창밖으로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캠퍼스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캠퍼스가 있는 직장과 직업을 가진 나의 행운이 너무나 고마워서 생각지도
않은 캠퍼스예찬론을 쓰게 되었다.

대학캠퍼스뿐 아니라 아름다운 열린 공간들이 우리의 도시들에 더
많아지기를 바라면서.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