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가 시작된 이후 오늘날까지 종족간의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혈통 생김새 언어 가훈,습관 신앙이 달라 올라 기름처럼 융화될수 없다는,
극히 감성적인 이유로 최악의 경우에는 서로를 무자비하게 살륙까지 하게
된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존재할수 있는 적자생존원칙이 종족간의 분쟁에 적용
되어 왔다는 것이다.

세계가 지구촌으로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도 그러한
감성편행적인 종족국의의 물결이 오히려 더욱 거세어지고 있다.

크로아디아인과 세르비아인,르완다의 투치족과 후두족의 끊일줄 모르는
분규는 인간성 파멸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례들이 아닐수 없다.

엊그제 르완다에서는 집권투치족군인들이 후두족난민들을 한꺼번에 무려
8,000명이나 무차별 살해했다는 소식이 또다시 세계를 경악케했다.

투치족(인구의 9%)과 후두족(90%)의 갈등은 5세기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15세기말 아프리카 동해안에서 목축으로 생계를 잇던 투치족이 내륙에
위치한 르완다로 들어와 원주민이었던 후두족 농부들을 점차적으로 정복하여
왕조를 세우고 후두인들을 노예로 삼은 것이 그 시초였다.

1889년에는 독일인들의 반이 보호령이 되었다가 1차대전후인 1919년에는
국제연맹의 벨기에 위임통령, 2차대전후에는 유엔의 벨기에 신닥통치령이
각각 되었다.

그때까지도 추치국의 왕정이 게속되었음은 물론이다.

1959년 후두족이 피의 항쟁으로 투치왕정을 무너뜨렸다.

그때 후두족은 투치족을 무차별 살포하자 50만의 투치족이 이웃나라들로
탈출했다.

2년뒤 후두족은 유엔감시하의 국민투감에서 승리를 거두고 62년1월1일
벨기에로부터 자치권을 얻어낸데 이어 그해 7월1일에는 완전독립을 하게
되었다.

그 뒤에도 두 종족간의 끊임없는 충돌로 인한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73년 후두족인 주베날 하비야리마나 소장의 쿠데타로 독재정권이
탄생했다.

그러나 하바야리마나대통령은 90년9월 8,000명의 추방투치인들이 우간다로
부터 처들어와 압력을 가하자 다량제와 언론자유, 대통령권한 제한과
신분중의 부족명갚기, 페지를 규정한 새헌법을 그 다음해에 발효시켰다.

그런데 지난해 4월 하비야리마라대통령이 피격을 받아 사망한 뒤 내전이
재발되어 그해 7월 투치족의 르완다.

국군(RPA)이 승리를 걷우었지만 두 종족간의 학살행위는 끝날줄 모르고
있다.

그동안 두 종족간의 보복학살로 무려 150만명이 희생당했다는 추산이고
보면 종족분규의 최약의 실상인 것만은 확실하다.

정치란 필요악이라는 사실을 절감케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