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자로 총수신 5조원을 돌파했다"(93년11월9일,하나은행)

"우리도 지난9일자로 총수신 5조원을 넘어섰다. 단지 발표가 늦은 것
뿐이다"(93년11월10일,보람은행)

"13일자로 총수신 10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국내은행중 최단기다"
(95년4월14일,하나은행)

"앞으로 계수경쟁을 포기하겠다. 대신 수익성과 고객밀착형경영을
펴나가겠다"(95년4월13일,보람은행)

하나은행과 보람은행은 지난93년 하루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똑같은 자료를 발표했다.

내용은 총수신5조원 돌파.발표는 하나은행이 하루 먼저 했다.

그러나 보람은행도 발표가 늦어서 그렇지 같은날 5조원을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년6개월후. 하나은행은 총수신10조원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보람은행의 대응은 엉뚱했다.

계수경쟁을 포기하고 수익성위주의 경영을 지향하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하나은행과 보람은행.두 은행은 닮은 꼴이다.

투금사에서 은행으로 전환했다는 뿌리부터가 그렇다.

고금리 신탁중심의 수신구조도 비슷하다.

공격적 영업전략과 점포운영,수익구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두 은행은 출범때부터 "숙명의 라이벌"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이제 두 은행은 닮은꼴임을 부정하고 나섰다.

하나은행이 10조원을 돌파했다고 해도 보람은행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오히려 "계수"란 말은 입에 담지도 않기로 했단다.

일핏보면 두 은행은 이제 제갈길을 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지향하는 바는 똑같다.

국내는 물론 세계일류은행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단지 방법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두 은행은 여전히 라이벌이다.

두 은행이 지금까지 상대방을 의식하면서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이
총수신이었다.

은행전환은 하나은행(91년7월)이 보람은행(91년9월)보다 두달 빨랐다.

그러나 보람은행은 은행전환 석달만에 총수신에서 하나은행을 따라잡았다.

1조원부터 4조원까지의 고지도 먼저 넘었다.

5조원은 같은날 돌파했지만 6조원과 7조원도 먼저 달성했다.

상황은 8조원고지를 넘으면서 달라졌다.

하나은행은 지난해말 9조원,지난13일 10조원을 잇달아 돌파했다.

18일현재는 10조1천3백37억원.같은날 보람은행의 총수신은 8조6천9백
95억원에 그쳤다.

이를 두고 하나은행은 "이제 보람은행은 더 이상 경쟁상대도 아니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보람은행은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인 매킨지사의 권고를 토대로
이미 수익위주의 경영으로 전환하는 중이어서 무리를 하지 않았을뿐"
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총수신경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그러나 다른 부분의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우선은 상품운용에서 그렇다.

두 은행의 상품은 표면적으론 닮아있다.

은행권중 최고의 수익률을 자랑하는 신탁상품을 간판으로 삼아왔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내용적으론 많이 다르다.

하나은행은 이른바 "클럽식 상품"을 주무기로 설정해왔다.

대상에 따라 차별화한 닥터클럽 로이어클럽 55클럽 사업가클럽
꿈나무클럽 페스탈로찌클럽등이 그것이다.

이에 비해 보람은행은 신선한 아이디어가 가미된 상품을 내세웠다.

금리파괴상품의 원조격인 "프리미엄통장"이 대표적이다.

일정 기간에 가입하면 금액에따라 금리를 차별적용한다는 이 상품은
은행권에 "세일상품"바람을 몰고 왔다.

두 은행만의 독특한 영업점전략도 첨예하게 맞딱뜨리는 부분이다.

하나은행은 "지역하나은행주의"로 유명하다.

내부적으로 지점과 출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그 지역의 유일한 하나은행
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반면 보람은행은 시간.공간적인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점포전략을
취하고 있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은행"이란 광고문구에서 보듯이 무인점포를
국내은행중 유일하게 연중무휴로 가동하고 있다.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3-4명으로 구성된 "초미니점포"도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출범때부터 "고객이익환원제도(BBR시스템)"를 실시, 철저한
고객밀착전략을 꾀하고 있다.

하나은행과 보람은행의 맞수경쟁이 은행권에 미친 영향은 크다.

"경쟁"이 무엇이고 "영업"이 무엇인지가 은행권에 본격 도입된 것도
두 은행간 라이벌다툼이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일류은행이란 지향점은 같지만 방법은 달리하기로한 두 은행의 맞수
다툼이 금융권에 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궁금한 시기다.

< 하영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