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예부터 사람의 용모에는 그의 정신이 드러나는 법이라고
믿었다.

특히 얼굴가운데 눈은 그 사람의 마음속까지 훤히 들여다 볼수 있는
창이었다.

그래서 눈밑에 고운 기색이 있으면 사특하고 비루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눈이 움푹 들어가거나 눈두덩에 수북하게 살이 올라 있으면 성품이 가혹
하고 눈에 분기가 있으면 과장이 많은 사람으로 여겼다.

또 눈을 흘려서 보거나 번득이면 아첨자라고 멀리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의 용모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이 "상인법"이다.

조선후기의 기철학자 혜강 최한기는 평생 사람을 가려쓰는 용인법을 탐구
했던 사람인데 그가 용인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강조한 것이 사람의
됨됨이를 헤아리는 "치인법"이었다.

그의 치인법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은 역시 상인법이었지만 그의 상인법은
관상쟁이가 외모만 보고 부귀빈천을 판단하고 기색만 살펴 길흉을 논하는
차원과는 전혀 다르다.

사람을 안다(지인)는 것은 선악이나 우열로 판단했을 때만 가능해지므로
지인이란 죽은 사람에게는 가능한 일이지만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불가능
하다.

따라서 혜강은 최종적으로 경험되지 않은 살아 있는 사람을 미루어
헤아리는 치인법을 내세운다.

그는 처음 만난 사람의 용모를 중시하지만 그것은 결코 절대적인 것이
될수는 없다.

"미천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재상의 기상이 있어야 참으로 귀한 상이요,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미천한 상을 가진 것이 참으로 천한 상이다"

혜강의 이런 말은 상이 결코 절대적일수 없다는 그의 의지를 나타내 준다.

능력과 성과에 앞서 용모를 통해 사람의 기품과 자질을 분별하고 다음
단계로 능력과 성과를 관찰하며, 그 뒤에 그것이 도덕성(인도)에 합치하는지
여부에 따라 인물을 평가하는 순서를 그는 따르고 있다.

치인하는 자의 자세는 "남과 나를 합쳐서" 헤아리는 수신의 자세였음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이런 측인의 도리를 깨친 의사가 병을 더 잘 치료한다는 논리와도
통한다.

최근 전국 5대도시에 근무하는 법관 35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49%가
"범죄형 얼굴이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상인의 능력은 오랜 여습에서도 생기는 것이니 법관들의 판단이 그르다고
만은 할수 없지만 상인법이 아닌 치인법에 따른 수신의 자세로 죄인들을
대해 왔는지 궁금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