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토처 < IMD 경영전략 교수 >

통계적으로 기업의 평균수명은 40년정도라고 한다.

창업후 40년이상 버틴 기업이라면 일단 성공한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업의 장수비결은 무엇인가.

기업이 정상에 올라서면 그때부터 쇠퇴의 씨앗을 배태한다.

초일류기업의 이면에는 항상 붕괴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같은 이율배반적 상황은 과거상태를 지속하려는 인간의 기본속성에서
비롯된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는데 개선이 왜 필요한가''라는 반문이 초일류
기업 경영자들의 ''철학''으로 굳어지기 쉽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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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기업의 경영진은 성공의 비결을 자신들의 경영방침이나 기술때문
이라고 믿는다.

외부경영환경을 잘 만난 덕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이런 자만심으로 인해 기업의 위상이 흔들릴 조짐을 나타낼때에도 실험
정신과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성향을 보인다.

사회에서 대접받는 성공한 사람일수록 전통에 반기를 드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경향을 나타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경영분석용어가 아니지만 성공한 기업경영자는 자사가
현재 만들고 있는 "제품"과 "활용기술"에대한 사랑이 너무 강하다는 식으로
풀이할 수도 있겠다.

IBM은 수년간 대형컴퓨터시스템을 고집하며 분산시스템으로의 업종다각화를
거부해왔다.

이런 IBM의 거부반응은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개척해 놓은 기존의 사업기반
(대형컴퓨터중심)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에서는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또 70년대는 소형컴퓨터(PC)가 보잘것 없고 성능면에서는 보완해야될
구석이 많았는데 반해 대형컴퓨터는 무한한 성장성을 약속해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던 시대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IBM이 소형컴퓨터를 앞세운 애플의 도전에 느리게
대처한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IBM경영진은 80년대들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공한 기업이 갖는 자부심과 지속되는 이익창출이라는 화려함에
취해 결과적으로 제대로 변신하지 못했다.

결국 IBM은 창사이래 최초의 적자장부에 직면하는 충격을 받은후에야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기술집약적인 산업에서 자사의 제품이 고도의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을 경우에는 자기 제품에 대한 경영진의 집착이 더 강할 수 있다.

반대로 평범한 제품이나 서비스일 경우에는 자기제품에대한 "사랑"이
그리 깊지 못해 새로운 것에 눈을 돌리는데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평범한 산업의 경우에는 경영진이 보다 높은 수익이 보장된다는
판단만 서면 기존의 제품생산방식과 업무흐름을 폐기하고 새 환경에
발빠르게 대처할 가능성이 높다.

성공한 기업은 또 조직이 비효율적으로 비대해질 수 있는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여기에 과잉관리(overmanaging)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독일의 한 화학회사는 사내 세탁소운영을 너무 세심하게 한 결과 세탁소에
들어가는 비용이 다른 회사의 3배로 늘어나는 우를 범했다.

성공한 기업의 경영자들은 오만하기 쉽다.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는데 인색하다는 것이다.

손대지 말았어야할 기업인수에 나선 경우에도 성공한 기업의 속성은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기업인수건은 통상 최고경영자의 진두지휘아래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잘못된 기업인수로 비춰지더라도 사내에서는 최고경영자가 물러난
뒤에나 올바른 평가가 나온다.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거물 최고경영자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성공한 기업은 거의 이상에 가까운 목표를 설정하고 바둥거리다 거듭되는
실패로 스스로 무기력해질 수 있는 위험에도 노출돼있다.

스위스의 제약회사인 호프만 라 로슈사는 신경안정제인 발리엄 리브리엄의
대히트를 기준해 높은 수익목표를 설정했다.

발리엄 리브리엄같은 대히트를 계속 쳐보겠다는 과욕을 부린 것이다.

높은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연구개발비를 쏟아부었다.

발리엄 리브리엄같은 대히트 상품개발은 운이 좋아야 일생에 한번정도 볼
수 있다는 점이 "발리엄 리브리엄의 대성공"으로 망각된 것이다.

호프만 라 로슈사는 몇번의 실패를 맛보았고 결국에는 발리엄 리브리엄의
특허기간이 끝난후에야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기업조직의 두뇌인 이사회는 신중한 결정을 내리는 한편 환경변화
에는 민첩하게 행동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사회는 외부로부터 적당한 비판과 견제를 받아야 한다.

이사회에 적당하게 충격을 주는데 있어 특히 주주의 권익을 대변하는
비상근 외부이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독일 상법에서 외부인사로만 구성된 감사위원회에 큰 권한을 부여한 것은
이사회에 대한 견제와 비판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표적인 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사회에 대한 외부견제기능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제너럴 모터사의 외부이사들은 수년간 막대한 손해를 본 후에야 경영진을
바꾸는 행동에 나섰다.

그것도 스스로가 아니라 성난 주주들에게 떠밀려 행동개시에 들어갔다.

이런 주주들의 압력도 미국같은 나라에서나 가능하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경영진(이사회)의 판단착오가 은폐되기 쉬운 경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때문에 성공한 기업에서는 과거의 성공기반을 파괴하고 새로운 더 큰
"성공"에 도전하려는 의식이 확산되기 힘들다.

변화를 시도하는 행동개시가 결정된후에도 경영자의 판단을 어렵게 만드는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이스트먼 코닥은 화학 영상업계의 세계적인 기업이다.

이 회사는 전자공학으로의 기술이전작업을 벌이면서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이 문제는 "전자영상으로의 기술이전을 가속시킬 것이냐 아니면 기존의
화학영상사업을 보호해야 하는냐"는 갈림길에 놓인 것이다.

화학영상에서 코닥의 위치는 세계 제일이며 일본을 포함한 국제적인 시장
에서 비교우위를 지니고 있다.

또한 화학영상분야는 성숙되고 안정된 시장이며 적정한 수익성이 보장된다.

첨단 기술이지만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을 연단위로 따질 정도로 긴 편에
속한다.

이에반해 전자영상분야는 성장성은 뛰어나지만 다른 사업적인 측면은
불확실하다.

제품의 라이프사이클도 월단위로 따질 정도로 변화가 심한 시장이다.

따라서 이 전자영상분야는 기존의 화학영상업계를 이끌어온 것과는 다른
경영방식을 요구한다.

화학영상은 신중하고 방어적인 경영문화가 필요했지만 전자영상사업을
벌이려면 성공에 대한 높은 보상을 약속하는 것과 동시에 실수에도 폭넓은
아량을 보여야 하는 차이점이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통상적인 해결책은 회사를 몇개의 단위로 분리해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필립스사는 "하드웨어"생산에 길들여진 급여체계와 기업문화로 인해
소프트웨어 사업진출에 어려움을 겪었다.

성공한 기업일수록 문제가 생겼을때 행정 또는 관료적인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는다.

부서간에 경쟁심리가 생기는 것을 경계하고 그럴 가능성이 엿보이면
행정적인 방식의 협상을 진행해 경쟁을 피해간다.

결과는 사기저하와 기업가정신의 쇠퇴이다.

변화의 도구로써 기업을 인수할때도 인수주체기업의 기업문화에 따라 합병
득실이 달라진다.

IBM은 네트워크 전문기술이 필요하자 벤처기업정신이 강한 롬사를 인수
합병했다.

IBM은 합병이후 자사의 대기업적인 기준을 가지고 롬사를 요리하기 시작
했다.

롬사의 모험적인 기업가정신이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이와달리 AT&T는 독점사업에서 형성돼온 자사의 기업문화가 신규진출한
컴퓨터사업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에따라 AT&T는 컴퓨터 회사인 NCR를 합병했을때에도 NCR가 컴퓨터산업
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도록 하는등 IBM과는 다른 전략을 구사했다.

물론 이런 합병이나 제휴가 장기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드물다.

특히 복잡하고 발전속도가 빠른 분야의 제휴에서 성공의 결실을 거두는
것은 더 힘들다.

경영자들은 그러나 합병이나 제휴에서도 합병의 주체인 대기업(일류기업)이
피인수회사의 경영문화를 인정하는 것이 성공의 가능성을 높여주는데 보탬이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성공한 일류 기업은 "성공"에 만취해 기업가 정신이 약해져
있다는 자사의 단점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경영환경이 주기적으로 그리고 작은 진폭을 그리며 변화하는 성숙된 산업의
일류기업일수록 경영자의 기업가정신은 취약하다.

이에대한 대응책은 조직을 혁신하는 길밖에 없다.

이제 서구의 대기업은 벤처캐피털 시대에 가졌던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거대한 기업들은 수 많은 분석가를 거느리고 있어 투자시점 선별등에서
실수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수가 없는 대신 위험부담을 지는 것에도 익숙하지 못하다.

실패의 위험은 성공하기 위해 치르는 대가라는 것을 잊고 지내는 것이다.

"성공한 후에는"이라는 질문에는 정답은 없다.

그러나 기업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여기서 또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성공경험을 되도록 멀리하면 할수록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