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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 서로 미매서추세츠공대(MIT)교수는 6일 오후 삼성경제연구소와
중앙일보가 삼성생명빌딩에서 공동주최한 국제세미나에서 "자본주의의
지각구조"에 대한 주제강연을 실시했다.

이날 강연내용을 간추려 본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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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계경제는 중국의 "물고기일화"와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이에 의하면 큰 물고기를 물밖으로 꺼내놓으면 다시 물로 돌아가기
위하여 요동치게 마련이다.

이렇게 계속되는 요동은 물로 돌아가기 위한 물고기의 계획적인
행동이라기 보다는 단지 고통스러운 상황을 탈피하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세계경제의 요동치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에서의 두가지
개념-즉 지질학으로부터 지판구조론( plate tectonics )과 생물학으로부터
돌변균형론( punctuated equilibrium )-을 빌려올 필요가 있겠다.

대륙의 지판들은 지구표면을 서서히 변모시키나 또한 갑작스러운
지진이나 화산폭발을 야기하기도 한다.

돌변균형의 시기에는 그동안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던 진화과정이
급격한 변화를 보이면서 이에따라 "적자생존"해오던 종이 갑자기
사라지고 전혀 다른 종에 의해 대체된다.

이의 예는 멀리는 2억년간 진화를 거듭하며 번성하였던 공룡이 갑자기
사라지고 포유류에 의해 대체된 것을 들수 있으며 가깝게는 말과
마차가 시속 100 로 달릴수 있는 증기기관에 의해 갑자기 대체된
것을 들수 있다.

대륙의 지판들이 지구표면을 변모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다섯가지의 근본적인 요인들이 세계경제를 변화시키고 있다.

첫째 공산주의의 몰락이다.

이에 따라 공산주의 세게에서 살아가던 전세계 인구의 3분의1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자본주의 세계로 흡수하는 과정에서 겪는 급격한
변화이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 붕괴이전에는 소련이 최대의 산유국이며 최대의
금속자원 산출국이라는 사실은 자본주의 국가들에 이러한 자원들을
수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세계에는 중요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러시아는 막대한 양의 유류와 알루미늄등의 금속자원을
수출하여 세계자원시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과거 공산권의 우수한 교육제도의 결과로 양산된 우수한 인적
자원들이 세계 노동시장으로 편입됨에 따라 한국을 포함하여 전세계적으로
모든 직업에 걸쳐 임금수준의 하향압력이 나타나고 있다.

둘째 자연자원이나 자본력등이 경쟁력 우위의 원천이던 산업의
시대에서 기능( skills )만이 유일한 장기적 경쟁력 우위의 원천이
되는 지식산업( man-made brain power industries )의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 주의는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도래하였다.

이 증기기관이 없었더라면 아무도 대규모의 자본을 사용할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 증기기관이 전기와 내연기관으로 대체되었지만 자본가들은
여전히 필수적인 생산수단을 소유할수 있었다.

따라서 기술은 당시 산업혁명의 출범에 있어서는 핵심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그러나 진화의 "적자"였던 자본가는 지식산업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종에 의해 조만간 대체되려 하고 있다.

이 새로운 시대에는 경제적 진보의 핵심요소인 "지력"이 소유의
대상이 될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독점적 기술이 기계장비가 아닌 사람의 머리속에 내장되어
경쟁자의 진영으로 쉽게 옮겨 갈수 있을때 그 기술을 어떻게 통제할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와 같은 요인들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할 것이다.

에를 들어 지식산업의 총아인 빌 게이츠는 향후 최신 멀티미디어를
갖춘 개인사무실들을 만들어 어느 사람이든지 그러한 사무실이 있는
어디에 가더라도 그 장소가 자기의 사무실이 되도록 하는 가상 사무실을
구상하여 이의 판매를 계획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기존의 사업방식및 고용구조 등을 크게 변화시킬수
있다.

셋째 인구구조 상의 변화이다.

세계는 역사상 처음으로 일은 하지 않으면서 정부로부터 많은 연금혜택을
받는 고령인구가 전체인구중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현재 65세 이상의 인구 비중이 날로 증가하고 있어
(2040년까지 총인구의 40%예상)이들의 소득비중이 젊은 층을 앞지르고
있다.

이에따라 이미 유통및 TV산업 등은 이들의 니즈에 맞추어 커다란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유람선사업 등과 같은 노인을 위한 산업이
번성하고 있다.

또한 이에따라 이들에게 사회복지를 제공하는 민주국가의 정부는
파산상태에 몰리게 될 것이다.

이는 고령층이 유권자의 다수를 점하게 됨에 따라 재정상의 이유로
이들에게 복지를 줄이려는 어떠한 시도도 좌절될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상 유례를 찾을수 없는 빈국으로부터 부국으로의 인구의
대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도 인구구조상의 변혁을 초래하는 큰
요인이 되고있다.

넷째 통신및 교통수단의 발달로 무엇이든 세계 어디서나 만들수
있고 세계 어디서나 팔수 있는 글로벌 경제시대가 도래하지만 이러한
다극화된 교역및 경제질서를 효과적으로 통제할수 있는 아무런 국제규범및
교역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의 GATT나 WTO시스템과 같은 국제무역기구는 EEC나 NAFTA와
같은 경제블록화 추세하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수 없다.

다섯째 20세기 미국이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질서의
유지에 힘썼으나 21세기에는 이와같은 역할을 담당할 특정국가가
없으리라는 것이다.

즉 다극화되어 가는 세계경제및 정치질서하에서는 국제질서유지의
관리자 역할을 담당할 국가가 출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1,300억달러의 경상수지흑자를 내고있어 차후 관리자의
역할을 담당할만하나 현재까지 일본은 그러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지
않다.

일본은 다른 나라에 파는 것에만 흥미를 가질뿐 국내시장을 해외시장으로부
터 격리시키고 있어 과거 자기시장을 열어 세계의 경제번영을 이끌었던
미국과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다섯가지의 경제적 지판들이 서로 부딪치며 현재 돌변균형의
시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선 가장 주목할만한 것으로서 경제적 지판들이 지구의 경제적
표면이라 할수 있는 부와 소득의 분배를 변모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화된 세계에서는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소득의 분배는
어느때보다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의 예로서 지난 20년간 미국경제의 경우 64%의 소득이 총인구의
1%에 해당하는 고소득층에게 돌아갔다.

이는 소비자구매력상의 변화를 초래하여 블루밍데일등 고소득층
대상의 백화점과 월마트 케이마트등의 저소득층 대상의 유통업체만
살아남았고 김블스 메이시 시어즈등의 중산층 대상의 백화점은 이미
도산하였거나 사라져가는 추세에 있다.

아마도 이러한 소득분배상의 변화는 한국과 같은 중진국들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것이다.

또한 이와같은 경제적 지판들의 활동은 지진 화산폭발과 같은 돌발적인
변화도 야기시킨다.

먼저 멕시코의 예를 들어보자. 최근의 통화위기가 일어나기 6개월전만
하더라도 멕시코 경제는 제반거시경제지표의 양호등 아무 문제가
없는듯이 보였다.

그러나 고수익을 찾아 멕시코에 유입된 미국의 자본등이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예측불가능한 갑작스러운 화산폭발이나 지진의 내습처럼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일국의 경제가 일거에 파산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것은 이와같이 이미 발생한 지진이나
화산폭발보다 훨씬큰 규모의 지각활동이 조만간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즉 현재 막대한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이 어느날 갑자기
시장을 봉쇄할 경우를 들수있다.

이경우 그동안 대일무역적자를 대미무역흑자로 메워왔던 환태평양
국가들의 경제는 일거에 파산지경에 빠질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들 국가는 현재 박빙위를 걸어가는 상태라 할수있다.

혹자는 미국의 무역적자상태가 전세계적으로 달러화에 대한 지속적인
수요때문에 지속될수 있어 이러한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몇년전 일본 주식시장의 폭락사태에서 보듯이 경제적인 원칙에서
크게 벗어난 이러한 상태는 조만간 어떠한 형태로든 깨질수밖에
없다.

멕시코가 통화사태이후 수입을 한꺼번에 반으로 줄인 사실은 이의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음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가고 디플레이션 시대의 도래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부동산등 자산가격이 하락하는 추세이다.

공산주의의 붕괴로 인한 세계노동시장에 양질의 노동력이 대규모로
유입되고 다운사이징등 기업의 경영혁신으로 실업이 증가함에 따라
실질임금과 실질구매력의 하향추세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있다.

또한 공산주의 붕괴의 여파와 NICS의 경제적 성공을 귀감으로 삼는
제3세계의 국가중 많은 나라가 저가격을 무기로한 수출지향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함에따라 세계적인 가격경쟁현상이 일반화되고있다.

이와같은 요인들은 향후 디플레이션의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밖에도 금융 재정정책이 불황타개책으로서 그 효력을 상실하고
각국은 이를 사용할수도 없으리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불황기에 각국 정부는 금리인하와 재정지출의 확대를
통하여 총수요를 확대시키는 방법을 써왔다.

그러나 최근 멕시코나 유럽 일부 국가의 사례에서 볼수있듯이 투기자본의
금융시장 교란으로 통화방어가 경기부양보다 중요한 목표로 떠오름에
따라 불황에도 불구하고 금리인하를 할수 없었다.

재정정책의 경우에도 고령인구의 확대로 인하여 재정지출을 늘린다해도
이 자금의 상당부분이 고령층에 돌아가서 경기부양의 효과가 약할뿐만아니라
누적된 재정적자로 인한 국가신용도 하락으로 국내외 차입이 어렵기
때문에 재정정책은 무력해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세계경제가 지진과 화산폭발의 불확실한 시기를
지나 어떠한 새로운 균형점에 도달할 것인가를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컬럼버스가 불확실한 지도를 가지고 일본으로의 항해를 시도하였으나
실제로 도착한곳은 북미대륙이었던 과거 경험과 같은 상황이라 하겠다.

지난 92년 국제 투기자본이 프랑스의 금융시장을 공격하여 프랑화가
폭락하였으나 멕시코와는 달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좋은 프랑스는
이를 잘 극복하였다.

이 사례를 거울삼아 볼때 한국을 비롯한 개별 국가들은 저축률을
높여 해외자본의 의존도를 최소화하고 치열해지는 세계경쟁하에서
자국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는등 경제상태를 건전하게 유지한다면
이러한 상황하에서도 북미대륙의 발견과 같은 의외의 소득을 얻을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