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분규 때 회사 정문에 마창노련 회원사 조합원들이 몰여왔다. 우리
회사 근로자들이 나서서 자율적으로 해결하겠다며 돌려보내 대형분규를
막을 수 있었다"(한일합섬 이태일부장)

"분규를 치른 후 조직관리를 정상화하는데 통상 3~5년이 걸린다. 폭행과
폭언이 남긴 감정의 앙금이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거평그룹인사.
노무담당 이용수상무)

일선 노무담당들의 최종 목표는 노사화합을 통한 사업장의 평화이다.

그러나 매년 이들이 실제로 신경쓰는 일은 분규예방이다.

자사노조의 쟁의행위를 합법적인 테두리안에 묶어두고 최악의 경우
파업이 있더라도 기물파손 폭행 감금등 불법행위만은 일어나지 않도록
뛰어다닌다.

불법분규의 후유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노사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신경을 쓰는 회사들은 분규때 창업주나
오너가 근로자들에게 모욕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노사양측이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이다.

개별회사에 국한될 노사문제가 사회문제로 불거지는 것도 대부분
불법 분규 탓이다.

어느 회사의 임.단협이 진통을 겪든 난항을 거듭하든 일반 시민들은
별 관심이 없다.

언론도 결과가 나올 때 까지 기다리는 편이다.

그러나 파업이 시작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특히 불법파업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경찰병력이 몰려들고 매스컴이 앞다퉈 보도한다.

지난해 6월말 서울지하철공사 분규 때처럼 시민들의 불만이 거리에
울려퍼지기도 한다.

노조의 주장에 수긍하면서도 방법을 문제삼는 시민들이 늘면서
분규는 눈에 띄게 줄고있다.

노조집행부도 집단이기주의로 비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분규를
일으키려하지 않는다.

회사 안팎의 공공집회에서 질서와 청결을 강조하는 노조가 늘고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합원과 시민에게 배척받는 노조는 이제 설자리가 줄어들고있다.

노사분규는 87년 3천7백49건이 정점이었다.

88년 1천8백73건 89년 1천6백16건을 거쳐 90년 3백22건을 기점으로
세자리수로 줄어들었다.

지난해에는 모두 1백21건의 분규가 있었다.

87년 전체 분규의 94.1%인 3천5백28건에 달했던 불법분규 건수도
지난해에는 전체의 35.5%인 43건으로 감소했다.

불법분규 가운데 특히 시위 농성 폭력 기물파손 제품반출저지등
수단불법사례는 91년 17건에서 92년 이후 매년 1건으로 대폭 줄었다.

지난해 12월 9일 오후.보라매공원에서 삼성승용차진출 반대집회를
마친 자동차업종노조원들이 구로공단 전철역까지 항의행진을 벌였다.

대우 기아 쌍용 아시아자동차 서해공업등에서 모인 1만5천여 근로자들이
벌인 이날 행진은 80년대말과는 판이한 양상이었다.

행렬 뒷편에서는 각사 노조 집행부들이 빵봉지 우유팩 유인물등을 계속
수거하며 따라다녔다.

길가의 삼성생명영업소빌딩을 발견한 일부 근로자들이 우유팩을 던졌지만
대다수 근로자들은 "질서"를 외쳤다.

시민들도 오랫만에 보는 광경에 즐거워하는 분위기였다.

경찰도 "집회 허가 시간을 넘겼다"는 경고방송만 했을뿐 해산시도는
하지 않았다.

지난해 6월9일 대우조선(대우중공업에 합병)노조집행부의 파업시도는
전체조합원 8천3백여명 가운데 4백50여명만이 참여해 무산됐다.

결국 당시 집행부는 9월12일 위원장 선거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불법분규와 과격행위를 자제하는 근로자들의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증거인 셈이다.

실제로 개별사업장의 노조집행부들은 과거의 전면파업 위주의 쟁의전략을
버리고 부분파업 리본패용 사복착용 등 다양한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냉각기간이 경과하더라도 파업돌입을 자제하고 부분파업이나 정상조업
하에 교섭을 진행하는 양태를 보이고 있다.

"무노무임"원칙이 정착되면서 파업에 따른 조합원손실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근로자들은 법적인 열위에서 내세울 것은 조직의 힘뿐이란
반응을 보인다.

최근 네팔 근로자들의 명동성당 시위에서 밝혀졌듯 비인간적인 대우를
서슴지 않는 악덕사업주들이 상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불법분규는 노사양측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회사내에서 서로 불신의 골이 깊어질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회사와
근로자들의 이미지가 손상된다.

조업차질로 인해 불량률이 높아져 제품판매도 급감한다.

파업이 끝난후 파업참가자와 정상조업촉구근로자들간 갈등이 증폭되기도
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지난해 분규 여파로 현재 5천여명의 근로자가
노조를 탈퇴하는등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지하철노조의 파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지난해 7월1일.

김수환추기경 강원룡목사 조요한전숭실대총장 김성수대한성공회대주교
송월주스님 이세중대한변호사협회회장등은 "사업사회의 현안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내놓고 파업사태와 관련,이렇게 밝혔다.

"국민들의 고통을 강요하면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찾으려할 때 그 주장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대기업노동자들도 법이 보장한 파업권의 행사에는 인내심을 갖고 파국적
상황이 도래하지 않도록 대화와 타협에 의해 슬기롭게 풀어나가야 우리
사회의 산업평화가 유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근로자들의 쟁의목적이 임금수준향상 근로조건개선 사회적지위향상에
있는 만큼 그 행위도 합목적적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