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었던 어느 책머리에 인생은 "일과 사람과의 만남"이라고 쓰여졌던
걸 기억한다.

태어났던 고향마을의 산과들을 뛰어다니며 지낸 친구들이나 이웃들, 그리고
학교생활을 통해 사귀었던 선후배들과 직장생활을 하며 만났던 동료들, 이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나에게는 소중한 것이고 또 이들과 어울려 만들고
겪었던 모든 일들이 다 기쁨이었다 생각한다.

그 중에서 10여년이 지나도록 꾸준한 만남을 계속해 오면서도 쑥스럽고
또 여러분들의 순수한 마음에 누를 끼치지 않나 싶어 오랫동안 주위에
밝히지 못했던 아주 작은 모임이 있다.

이제와서 이 모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세월도 상당히 지났거니와
나에겐 작지만 즐거움이었고 그분들의 두터운 정과 그 동안의 아낌없는
참여에 감사를 드려야할 것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월 22일이면 열명(다섯 부부)이 만난다.

굳이 열명이라고 하는것은 부인네들도 개별적인 회원의 자격을 갖고 있는
까닭이다.

모임 이름을 "두리"라 했었는데 별뜻은 없지만 순수한 우리말 같으면서
친근감이 드는게 좋았다.

요즘와서 생각하면 참 잘 지었다 싶은것이 전원이 항상 부부동반하여
"둘이(두리)"같이 모이는 모임의 성격을 잘 나타내주는 것도 같아서이다.

우리는 70년도에 내가 장안평으로 이사가서 90년 이사나올때까지 한동네
에서 살았었고 지금도 다른분들은 그곳에 거주하고 있다 같은교회(장안제일
교회)에 다니면서 만나게 되었다.

80년 봄으로 기억되는데 한번은 교회에 나오는 한학생의 학비를 도와준적이
있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교회내에 장학기금을 만들기로 하고 많은분들의
뜻을 모았었는데 그때 기꺼이 도움을 준분들중 주광훈(통인산업대표),
남궁연(광신악기사장), 김용철(리빙스타 판매부장), 김용협(협신치과기공소
경영)씨가 지금 모이는 사람들이다.

그동안 여러분의 끊임없는 도움으로 지난해에는 기금도 5천만원규모로
만들어져 중.고.대학생 각2명씩의 등록금을 지원하고 있다.

지금이야 다른분들이 장학회를 훌륭히 이끌어 가고 있고 우리는 그저
힘닿는대로 밀어주면서 지켜보고 있지만 그때의 마음과 열성들이 일을
떠나서도 그냥 지나칠수 없게 만들었고 자연스레 모임을 갖게 되었던 것이
오늘의 "두리"를 있게 했다.

우리의 조그만 만남이 싹이 되어 여러사람들에게 격려가 되고 용기를 줄수
있기를 기도해 보는것이 "두리"가족의 작은 기쁨이라 할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