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선거에 나섰던 김철수 통상대사가 아깝게도
도중 하차하고 말았다.

대신 사무차장에 내정되었다는 발표다.

지지국가 수에서 열세를 보인 상황에 김대사로서는 더 버틸 힘이
모자랐던 모양이다.

이번 선거전은 사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될만 했다.

애초부터 승산이 적은 각축전에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우리정부와 김대사는 예상외로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을만 하다.

비록 당초 목표인 사무총장 진출은 실패했지만 사무차장직을 확보함으로써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한차원 높이는 계기가 됐다.

김대사지지를 위한 외교활동을 통해 선진국과 개도국간 교량역할을
맡을 선진개도국이라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심어줬다는 부수적 성과도
거두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세계 12위의 교역국으로 성장했고 내년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한다.

국제무대에서 우리의 책임과 역할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까지 국제 무대에서 늘 조연역에 머룰러야
했고 수많은 국제기구 안에서도 변변한 자리하나 차지하지 못한
처지였다.

이점에서 김대사의 사무차장 진출은 한국인으로서는 사상 처음
범세계적인 영향력을 갖는 국제기구에서 최고위직에 오르는 의미있는
사건이다.

이 일이 앞으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에 우리국민이 대거 진출하게
되는 새로운 전기로 작용하게 되길 바란다.

김대사가 사무차장에 취임하게 되면 새로운 국제 무역질서를 조율하게
될 WTO안에서 우리의 입지도 얼마쯤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사무차장 자리는 특정국가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김대사의 사무차장확보는 국제무역 흐름에 대한 정보수집
등에서 우리에게는 여러모로 유리한 여건으로 작용할수 있을 것이다.

또 무역분쟁이 발생했을 때 우리정부와 기업의 입장을 전달할 공식.비공식
채널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이 사무차장직에 추대된 김대사가 기능별 분야별로 나뉘는
사무차장의 역할중 어떤 부문을 맡게 될지 궁금하다.

WTO가 GATT(관세무역일반협정)와는 달리 개도국입장이 많이 반영됐다고는
하지만 이번 사무총장 선거에서 보듯 WTO는 여전히 선진국지배의
국제무역기구이다.

이때문에 우리는 김대사의 역할이 선진국에 의해 좌우돼 형식적이면서
덜 중요한 부문을 맡게되지나 않을까 우려한다.

김대사의 역할은 또다른 협상을 통해 결정될 것이다.

선진국을 상대로한 우리정부의 대외협상력에 또 희망을 걸어본다.

쿠웨이트 석유회사의 파업으로 세계 유가가 오름세를 보이자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오름폭은 대단치 않다.

현재로선 그다지 염려할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작은 파장에도 긴장하는 이유는 있다.

첫째 세계 석유시장은 지금 중동을 비롯한 산유국들의 생산조절로
수급균형과 가격안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어떤 돌발적인 사태로 공급에
조그만 차질만 생겨도 가격이 뛸 상황에 있다.

둘째 세계경제가 회복세에 있는 데다 특히 중국과 아세안등 급속성장
국가들의 에너지수요가 급증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금세기말쯤
제3의 오일쇼크 또는 에너지위기가 닥칠 위험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많다.

셋째 최근의 미달러화 폭락과 국제 통화불안심리 확산을 계기로
산유국들이 달러표시 석유수출가의 인상조정,또는 거래통화 변경을
추진할 움직임이란 보도가 있는데 이는 한국과 같은 수입국 입장에서
볼때 도입원유가의 상승으로 귀착될 것임을 뜻한다.

이같은 국제시장 동향은 우리에게 석유를 비롯한 모든 에너지의
합리적 이용,특히 절약.절제의 절실함을 일깨워준다.

우리의 에너지소비 증가율은 선진국은 말할것 없고 개도국들과
비교해서도 높다.

줄곧 경제성장률을 앞질러왔으며 근년에 다소 둔화되긴 했으나 기조에는
큰 변동이 없다.

특히 전량 수입하고 전체 1차에너지 소비의 70% 가까이를 차지하는
석유와 LNG(액화천연가스)의 소비증가율은 더 빠르다.

LNG사용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지난 87년 이후 93년사이 6년간 소비량은
2.7배,석유소비량 역시 같은 기간중 2.7배 규모로 각각 늘어났는데
실질 GNP(국민총생산)규모는 고작 1.6배,경상 GNP로 계산해서도
2.4배로 밖에 팽창하지 않았다.

당국이 예상하고 있는 올해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96.9%에 달하며
여기에 지출될 외화는 지난해보다 15.2% 많은 174억달러에 이른다.

물론 그 대부분은 기름으로서 연간 수입량이 6억 배럴을 넘으며
다음 세기초에는 10억 배럴에 육박할 전망이다.

여름철의 전력비상 말고도 늘 석유위기 LNG위기를 경계해야 할 형편이다.

길은 절약밖에 없다.

또 절약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가격현실화를 통해 절약의식을 함양하고
에너지의 이용합리화를 위한 투자확대를 적극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

교육정도가 높고 젊을수록 에너지절약 의식이 낮다는 최근의 한
조사결과는 앞날을 더욱 걱정스럽게 한다.

정부가 종합적인 과소비억제 대책을 강구중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우리에게 지금 진정 필요한 것은 구체적이고 확실한 에너지 절약대책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