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달 남짓 여야가 끌고 당기는 세싸움에 통합선거법의 일부가
겨우 수정됐다.

그 와중에 기초자치단체를 정치의 실체인지 행정의 실체인지 얼버무린채
어중간한 성격으로 규정하고 말았다.

기초의회의원은 정당공천을 배제하고 기초단체장은 정당공천을
받아도 되는 타협안이 통과되었는데 타협을 본질로 하는 민주정치를
한답시고 가장 졸각을 연출했다.

선거직을 뽑는 일은 당선후의 역할이 무엇이든 가넹 어디까지나
정치이다.

그리고 이번 일로 정치권에 대한 불신만 팽배해 진것은 다른 것
다 차치하고라도 수정안이 통과된 그 날은 바로 1년전 통합선거법이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모처럼 화기애애한 가운데 청와대에서
축하모임을 열던 날이라는데 있다.

정치가 아무리 일관성이 없는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이처럼 과거을
잊어도 되는 건지 실망만 겹친다.

그리고 더 가중스러운 것은 이같은 여야합의로 의회를 통과한 법의
존재를 무시하고 내부공천이라는 편법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거에 입후보한 사람에게서 정치색깔을 결코 지워버릴수 없다는
뜻일께다.

어쨋거나 의심투성이의 지자체 선거는 치르게 되었고 그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기왕에 치러야 하는 선거니 잘해야 한다.

좋은 사람을 뽑아 참여와 복지가 골고루 퍼지는 민주제도의 꽃을
피워야 한다.

그런데 지금부터 걱정이 없지 않다.

새 선거법은 법정 선거비용도 낮추어 잡아 돈안드는 선거를 지향하고
선거운동도 공정경쟁을 하도록 유도하면서 불필요한 제한규정들을
풀었다.

자원봉사자들이 선거캠페인에 참여하는 미국식 선거도 시도해 보고
법과 규정을 어기는 후보자와 운동원은 큰 불이익을 감수하도록
엄격하게 규정하는등 과거와는 다른 선거풍토를 조성하려는 노력이
개혁입법의 구석 구석에 잘 반영되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처럼 과거와 다른 공명선거에의 노력이 실제로 얼마나
성과를 거둘 것인가에 의구심을 갖게한다.

그것은 벌써부터 각 지역에서는 선거의 단골메뉴인 문중 성씨등
친인척 학교동창등 학연 그리고 장학회 등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
온갖 연이 날뛰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잘 짜여 있어도 이를 실천하는 주역들과 유권자들이
옛날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선거는 그저 민주제도를 분장하는
겉치레에 불과하게 된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선거혁명을 운운해왔다.

그래도 믿을수 있는 사람은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이니 비록 이들이
지나친 자익추구로 결과를 망칠수도 있긴 하지만 정직하고 순수한
대중에게 기대를 걸만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이 믿음직해지는 것은 오랜 세월동안 그래도 민주의식을
실천하는 기회와 장이 크게 열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오는 선거를 잘 치르면서 명심해야 할것은 순수한 대중을
위해 일할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의견을 모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흔히 역할이 무엇이니 이러이러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역할론이 피상적으로 되풀이되어 왔는데 차제에 밝혀야 할 것은
보다 본질적으로 지방자치라는 "분권구조"가 갖는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이다.

따라서 지방화의 추이에 따라 변모하는 국가와 사회의 구조에 관해
약간 언급하면 지방정치의 전개로 분권구조가 형성된다는 것은 우선
지방단위의 독자성을 전제로 한 서비스공급체제가 설정됨을 의미한다.

그것이 규모의 경제의 묘를 살리지 못해 비능률을 초래할지 모르지만
또 그것대로 작은 규모의 효율성을 얻을수 있고 동시에 그 혜택이
모두 지역주민에게 돌아가면 그이상 바랄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방정치의 전개로 주민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골고루
정치과정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방단위에 형성된 금융업 부도산업 중소상공업 심지어 지역매체등
일부 소수 지배집단의 이익이 더 반영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큰 일인 것이다.

기존의 "세계정치-국가정치-지방정치"의 삼단계구도에서 국가정치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경감되면서 지구지방화 (glocahzation) 라는
용어조차 쓰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것이 주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본을 위한 지구화/지방화"로서 "성장연합"의 그늘에 대다수가
희생될 염려조차 없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방정치시대의 전개가 자칫 전국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일을 지방정부에
맡겨 속죄양이 되는 일은 없는지 또 혁신정책의 실험장으로 활용되는
일은 없는지 등을 검토 이러한 가능성에 충분히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선거를 맞아 유권자가 판단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방의회의원선거인 경우에는 단체장이 성장연합의 논리를 펴면서
지역개발사업에 전념할 경우 형평과 정의를 저버리지 않도록 견제할수
있는 후보자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체장은 무엇보다도 기존의 중앙정치 논리를 펴지말아야 하며 지역간의
성장경쟁에서 희생양을 양산하면 안되기 때문에 앞에 지적한 문제를
극복하면서 주민의사와 통제를 기꺼이 수용할줄 아는 공인으로서의
자격이 넘쳐야 한다.

이런 사람을 기존의 이념과 틀속에서 찾기가 어려울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 후보자를 주목하는 것도 정치개혁의
한 출발일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