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작년 6월19일 SBS-TV에서 방영된 "길옥윤고별 콘서트"에서
휠체어에 탄채 환하게 웃고 있었던 그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때 그는 암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있었고 또 "고별 콘서트"
라면 눈물짓는 어두운 장면을 예상하기 쉬웠는데도 그는 의외로 담담
하였고 주변의 호의에 감사하는 자세를 흩으리지 않았었다.

길옥윤(본명 최치정)의 생애는 최희준이 레코드에 취입하였고 나중에
패티 김이 불렀던 "빛과 그림자"의 가사처럼 우여곡절이 많았다.

"사랑은 나의 행복/사랑은 나의 불행/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그는 패티 김과의 결혼생활이 파경에 이르렀을 때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말한적이 있다.

"나는 차츰 내가 지닌 본래의 빛을 잃어 가고 있었어요.

사랑은 나의 천국이며 지옥이었고 그것은 끊임없이 교차되는 명암과도
같았지요.

어느 날 밤 비 오는 창가에 앉아 나는 사랑의 이률 배반적인 모습을
멜로디로 옮겼지요.

그 노래가 바로 "빛과 그림자"지요.

길옥균(세례명 요한)은 평북 영변에서 태어나 평양의 종로국민학교,
평양고보를 거쳐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였다.

그가 경성 치전에 입학하게된 것은 한의사였던 할아버지와 경성의전
(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라는 가업을
계승하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해방후 고향에서 학비가 제대로 조달되지 않자 평소 좋아하던
음악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된 것이 결국 평생의 직업이 되고 만
셈이다.

그가 암이라는 병을 얻게 된 것은 서울에서 사업에 실패하고 일본
도쿄(동경)로 건너간 뒤의 일이다.

그는 객지에서 외로운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작곡활동을 계속 하였고
또 가톨릭에 입교하였다.

그의 가정은 3대째 내려오는 가톨릭집안이었지만 그는 뒤늦게 93년
성탄절에야 동경한인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그의 부인과 둘째
딸은 작년말에 세례를 받았다.

그는 82년에 작고한 어머니께 "성가를 작곡하여 하느님께 봉헌하겠다"
고 약속한 것을 지켜서 병상에서도 "우리와 함께 계신 주" "참 행복한
미사"등 50여곡을 작곡하였다.

그는 작년말에는 "전에는 물질적인 만족과 작곡가로서의 명예를 행복
으로 알고 지냈으나 이제는 하느님과 함께 있는 이 순간이 진정한
행복임을 깨달았다"고 신앙고백을 한 일이있다.

죽음의 준비를 하였다고나 할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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