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불의 찬미자"다.

불은 그것이 인간에세 주는 여러가지 편리함 못지않게 강한 상징성을
가지고 인간의 정신생활에까지 깊은 영향을 주어왔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솟아오르는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원시인들은 대목과 발화봉의 마찰로 생성된 불을 성적결함의 결과로 간주해
불은 "생명의 씨앗"이라고 믿었다.

옛날 양반가에서는 아낙네들이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인계인수함으로써
가통이 계승됐다.

새 며느리가 불씨를 꺼뜨리면 쫓겨난 사례도 전해온다.

제사때 초를 켜고 향을 피우며 소지를 올리는 것도 불이 지닌 생명력이
하늘과 땅, 이승과 저승, 조상과 후손을 이어준다고 생각한데 기인한다.

불은 또 더럽고 사악한 것을 물리쳐 주는 "정화의 표상"이기도 하다.

정월 대보름 풍속인 탈집태우기 논두렁태우기 횃불놀이 등은 액운을 쫓는
놀이이고 혼인한 새색씨가 시집에 처음 오는날 문앞에 화톳불을 피워놓고
그것을 넘어 들어가게 하던 풍속도 혹시 묻어올지도 모를 잡귀를 쫓는
액막이었다.

불은 재생을 상징하기고 한다.

조선왕조때 입춘 입하 토왕 입추에는 개화를 해서 새로 만든 불을 왕궁에
진상한뒤 민간에 나누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만기요람"에 전해 온다.

매년 다섯 차례씩 개화를 통해 새로운 삶을 다짐한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선는 불이 공동체생활의
유대를 상징하는 신앙의 대상처럼 중시 되었다는 점이다.

이사할 때면 불씨를 꼭 가지고 갔고 자식들이 분가할 때도 그 불씨를
나누어 주었다.

서양에서의 횃불은 사랑과 화합의 상징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라에 빠진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횃불은 유명하다.

아테네여신이 그리스군을 도와 페르시아군을 무찌른뒤 코린트에서 벌어진
횃불대행진은 화합의 상징인 횃불의 의미를 잘 설명해 준다.

현대전자가 16일 "노사불이 신문화" 결의대회를 갖는다는 소식이다.

노사정대표가 산업평화와 세계화를 염원하는 불을 점화시키고 그것을
서울 계동 현대르부사옥에서 이천 현대전자 본사까지 노사대표 250명이
도보로 봉송해 "노사공영의 탑"에 점화한뒤 대회를 시작한다는 계획이
이채롭다.

"여러가지를 단 하나로 만드는 것은 순수하고 단순한 불이다"

P 클로델의 말처럼 화합과 사랑의 상징인 횃불이 "노사공영의 탑"에
점화돼 꺼지지 않고 오래오래 타올랐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