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업계에 "TV대회전"이 한바탕 벌어질 모양이다.

멀티미디어 붐과 맞물려 영상문화가 고도화되면서 가전업체들이 고기능.
고품질 TV를 다투어 내놓고 있는 것.

여기에 생활수준 향상에 따른 대형제품 선호현상이 가세하고 있다.

단순한 방송시청만이 아니라 각종 첨단 영상기능을 부가한 복합형TV도
잇달아 출시되고 있다.

가전업체들간 TV시장 다툼이 입체전의 양상을 띠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트렌드에는 소비자들의 "더 크고, 깨끗하고, 생생한 화면"을 바라는
요구외에 TV시장에 새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가전업체들의 마케팅
전략도 한몫 거들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존 컬러TV시장이 90년대이후 연간 230만대 안팎에서 정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는 컬러TV시장이 93년 230만대를 고비로 작년에는 226만대로 오히려
축소된 것으로 어림잡고 있다.

올해 시장규모도 227만대선에 머물러 거의 작년수준에서 제자리걸음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만큼 기업간 시장다툼은 더욱 치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가전업체들의 시장다툼은 우선 기존TV의 대형화 경쟁으로 불꽃을 튀기고
있다.

21인치이하 중.소형TV 수요가 줄어드는 반면 25인치이상 대형TV를 찾는
발길이 갈수록 늘고 있어서다.

이런 현상은 삼성전자가 마케팅 서베이조직인 생활소프트팀을 통해 조사한
결과에서도 잘 나타난다.

혼수물품을 장만할 때 25인치이상의 대형 TV를 구입하겠다고 응답한
소비자가 전체 조사대상자의 절반을 넘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에따라 올 대형TV 판매목표를 작년실적(46만대)보다 8만대
많은 54만대로 책정, 전체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절반을 넘는 55%로
잡고 있다.

LG전자도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21인치 이상의 판매비중을 올해 75%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대우전자는 아예 구미공장의 19인치이하 중.소형 컬러TV라인을 3개에서
2개로 줄이는 대신 21인치이상 라인을 4개에서 5개로 늘리기로 했다.

대형화 경쟁은 최근들어 "와이드TV 붐 일으키기"로 이어지고 있다.

와이드TV란 가로와 세로 화면크기가 4대3으로 다소 뭉툭한 느낌의 화면을
전달하는 기존TV와 달리 극장화면과 똑같은 16대9 비율의 화면으로 돼있어
넓은 시야를 제공하는게 특징이다.

LG전자가 지난 92년9월 36인치 와이드스크린 TV를 개발하고는 이듬해
1월 시중에 내놓았을 때만 해도 "사세 과시를 위한 시제품 발매"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작년의 국내 와이드TV 시장규모도 적게는 3,000대, 많게는 7,000대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그런만큼 가전업체들도 올초까지는 와이드TV를 본격 생산하지 않고 주문을
받은 만큼만 찍어내는 "파일럿 라인"으로 명맥만을 이어왔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LG.삼성.대우등 가전3사가 잇달아 첨단기능의 와이드TV 개발을 마치고
대량 생산에 들어갔거나 생산 준비를 서둘고 있는 것.

LG전자는 올 2월말 36인치짜리 초평면 수퍼플랫 브라운관 방식의 와이드TV
를 개발해 3월초부터 본격 시판에 들어갔고 삼성전자도 지난 8일 대대적인
32인치 와이드TV 신제품설명회를 열면서 LG에 응수했다.

삼성이 개발한 "명품 더블와이드 TV"는 32인치 화면을 좌우 반으로 나누어
21인치 두 화면으로 서로 다른 채널을 동시 시청할 수도 있게끔 한 것이
특징이다.

삼성전자는 오는 5월 28인치형과 24인치형을 추가로 개발해 판매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LG전자도 잔상제거 기능을 강조한 28인치형을 5월부터 시판키로 일정을
잡아놓고 있다.

이같은 양사의 선점경쟁에 대우전자도 가세할 채비를 서둘고 있다.

5월부터 28인치형 와이드TV를 개발해 곧바로 시판할 계획을 세워둔 것.

영상기기 전문업체인 아남전자도 오는 12월께 36인치 대형 와이드TV를
개발해 내놓을 계획으로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다투어 와이드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은 내년부터 본격
실시될 위성방송이 와이드전송 방식을 택할 것으로 알려지는등 시장기반이
점차 확보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따라 와이드TV 수요도 올해 2만대, 내년에는 11만대등으로 점차 확대
되고 97년엔 58만대, 98년에는 113만대로 늘어나는등 엄청난 폭발세를 보일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가전업계의 TV시장 다툼에 있어 와이드TV경쟁은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당분간 시장 주도권을 이어 나갈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 기존TV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품질.복합기능화 경쟁"은 보다 치열하다.

LG전자가 화면속에 또다른 작은 화면을 형성하는 PIP(Picture In Picture)
기능의 4원색 수퍼플랫 방식 "아트비전"을 주력제품으로 내놓고 있는데 대해
삼성전자는 화면의 평편도와 수신감도 음질 화질등에서 세계제1을 자부한다
는 "명품TV"로 대응하고 있다.

대우전자는 대구경전자총등을 국산 개발해 화질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킨
"임팩트 개벽TV"로 맞서고 있는 양상이다.

여기에 브라운관에 의한 배면투사방식을 활용해 화면의 선명도를 크게
끌어올린 프로젝션TV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복합기능 분야에서의 경쟁도 갈수록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TV와 VCR의 기능을 결합한 TVCR가 대중상품화된 지는 이미 오래다.

TV에 비디오CD(콤팩트 디스크)를 재생할 수 있게끔 개발된 비디오CD-TV를
비롯해 노래반주 기능을 겸비한 노래방TV도 선보이고 있다.

이같은 복합기능TV는 세계 시장에서 품질의 우수성을 검증받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 민간기관인 소비자연맹이 발간하는 "컨슈머 리포트"지가
작년 12월호에서 TVCR부문에 관한 한 한국3사의 제품이 최상위권에 이른다고
발표한 것이 좋은 예다.

이 잡지는 화상 선명도등에서 LG전자와 삼성전자 제품이 일본 히타치와
미국 에머슨사제품을 제치고 각각 1,2위에 랭크됐으며 대우전자 제품도
미국 제니스사를 젖히고 5위로 평가됐다고 밝힌 것.

업계는 이같은 여세를 몰아 꿈의 TV로 불리는 고선명(HD)TV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93년 대전엑스포때 국내 가전사들에 의해 공동 개발된 HDTV 시제품이
선보인 이래 상용화를 향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핵심부품의 국산화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다 방송방식이
결정되지 않았고 국내방송사들도 HDTV방식의 방송을 위한 준비를 소홀히
하고 있어 본격 상용화되는 것은 빨라야 2000년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 가전업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당장 93년까지 지켜온 세계 최대의 컬러TV 생산국 자리를 지난해 중국에
내준 점이 걸리는 대목이다.

지난해 한국의 컬러TV 총생산량은 1,350만대를 기록한 반면 중국은
1,400만대를 만들어내 한국을 밀치고 세계 최대생산국으로 올라섰다.

중국은 이 여세를 좇아 수출부문에서도 한국을 추월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오는 2000년까지 연간 TV생산량을 1,800만~2,000만대로 늘려 세계1위
생산국 자리를 지키는 한편으로, 수출도 오는 2000년까지 800만대로 끌어
올린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물론 한국의 지난해 컬러TV 수출은 1,000만대를 넘어서 아직은 독보적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머잖아 중국에 추월당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얘기다.

중국과의 물량경쟁만이 신경쓰이는 대목도 아니다.

첨단기능의 고부가가치 TV분야에서는 일본에 크게 못미치고 있는게 한국
TV산업의 현주소다.

미국 일본 유럽등 선진국시장에서는 한국업체의 브랜드가 제 평가를 받지
못해 대부분 고급TV는 일본이나 미국기업의 브랜드를 빌리는 OEM(주문자
상표부착 생산)방식으로 수출하고 있는 형편이다.

"기술 한국"의 평가를 이끌어 내야 하는게 한국TV산업에 주어져 있는
과제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국내 가전업체간 고품질.고기능 TV개발 경쟁은 기대를 갖고
지켜볼 만한 일이다.

< 이학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