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를 어떻게 보내는가라는 문제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직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되었다.

적당한 운동을 하거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말끔히 해소하지 않고서는
활력있고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배우기를 좋아하는 나는 대중적인 운동은 대부분 해 온 터이지만
4년전 부터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산에만 전념하고 있다.

재작년에 70회,작년에 66회 등반을 했으니 어지간한 셈이다.

87년에 골프를 시작했었다.

만3년 그럭저럭 쳤는데 어느날부턴가 아주 엉망이 돼 버렸다.

골프야 원래 약간의 내기가 있어야 재미있는 법.

그런데 골프가 이렇게 엉망이 되고보니 결과는 늘 처참한 것이었다.

이러다간 안되겠다 싶어 먼지 쌓인 배낭을 꺼내 메게된 것이다.

그랬더니 산이 그렇게 좋을수 없었다.

오르는 과정도 좋고,정상에 오른 기분도 그만이었다.

더구나 돌아올때는 한결같이 기쁨으로 충만했다.

내게 꼭 필요한 운동이라는 의미의 산도 좋다.

그러나 계절따라 기후따라 시시각각 변화를 느끼게 하는 가운데 나 자신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산은, 또한 내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곳이 다름아닌 그 자연이라는 사실을 묵묵히 말해주는 산은, 내게 있어서
마음의 고향이요 스승이다.

매주 토요일이면 구기동엘 간다.

고급 빌라들을 지나 신라가든 앞에 있는 자연보호탑에 매주 토요일 2시반
이면 북한산춘추산우회회원들이 모이는 것이다.

인천제물포고등학교동창들의 산모임이다.

특별한 약속이 없어도 그 시간에 이곳에 나오면 된다.

많을 때는 열댓명이 되기도 하고 적을 때는 두세명이 되기도 한다.

90년4월21일 결성된 이래 한주도 쉰 적이 없는 실적을 자랑한다.

자주 나오는 회원들의 면면을 보면 인하대 의대 홍재웅교수(4회) 세종대
미대 홍용선교수(6회) 김승묵변호사(7회) 클래식기타리스트 노근영동문
(7회) 서인물산 효정박대표(7회) 서울대철학과 이태수교수(7회) 삼성정밀
조인형대표(7회) 정신문화연구원 최병찬교수(7회) 주.밤빔 성안행대표
(7회) 신우섬유 박경호대표(8회) 중앙대경영대 윤봉한교수(8회) 개인사업을
하는 김홍윤과 박상구동문(9회) 한국죤슨 윤상원상무(10회)등이며 변리사인
강성구동문(8회)이 회장, 세양선박 조병수이사(9회)가 총무를 맡아 살림을
꾸려간다.

4년간 매주 같은 산을 오르는데도 신기한 것은 산이 한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사실이다.

산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