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각각 광복50년, 패전50년을 맞는 한.일 양국 일각에서 미래의 공동
번영이 아니라 과거에 휘말리는 퇴영적 기운이 새삼 감돌고 있어 3.1절을
맞는 오늘의 감회를 착잡하게 만든다.

지난 반세기 우여곡절 속에서도 양국은 여러 분야에서 교류를 증진해왔고
국제사회에서도 단순한 인접국 이상의 유대관계를 심화시켜온 것이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주로 일부 일본정객의 반시대적 언동에 자극되어 불행한 과거를
들먹이는 마찰은 끊임없이 반복돼 왔다.

그러나 그 때마다 미래의 공동번영이 더 중요하다는 대국적 공감에서 이반
보다는 접근의 궤를 추구해 왔다.

하지만 올들어 움직임들은 개별 정객의 즉흥적인 군국노선 합리화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과거반성의 뜻으로 불전선언을 의회에서 채택케 하려는 사회당소속
무라야마총리의 시도가 되레 태평양전쟁 정당화세력의 조직화 양성화를
자극하는 역효과로 이어진 것이다.

"종전 50주년 국회의원 연맹"이란 이름의 이 단체는 "전쟁사과" 반대에
그치지 않고 태평양전은 침략전이 아니라 서양의 식민지화된 아시아의 해방
전쟁이었다고 서슴없이 표방한다.

오는 5월의 범아시아적 전몰자 추모행사까지 계획하고 있어 우발 행동으로
만 볼수 없다.

우리는 이같은 일본인의 정서를 전체가 아니라 일부이며, 군국제국주의
복귀 시도라기 보다 소애국심의 연장쯤이라고 믿고 싶다.

불전선언은 외침을 유발한다는 그들의 논리를 침략야심으로 매도만하기
힘든 일면이 있다.

그러나 근본에 있어 그들이 저지른 그 끔찍한 반인류적 범죄를, 자가발전한
아시아공영 의도로 도색 미화하는 일본인의 발상에서 우리는 환멸을
느낀다.

철저히 뉘우친 독일을 가진 유럽인들의 행운에 비하면 저리 편협한 일본인
의 이웃, 아시아인의 운은 숙명이란 말인가.

하나 만사는 상대적이다.

100%의 과오가 한쪽에만 있다고 보기 힘든게 인간지사다.

물론 잘못 되기로는 참략용 식민지 시설물이 독립뒤 현지의 산업화에
다소 기여했으니 그들의 공로라고 반복 강변하는 일부 일본인의 양심이다.

그러나 그 물리적 현상은 담담히 인정하고,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논하는
성숙성이 만일 피해자측에 있다면 부러움 거리다.

물질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선진권 진입을 고대하는 한국이야
말로 부끄러운 과거 거론에 자제의 성숙을 보일 최초의 적격자라고 우리는
믿는다.

오늘 구총독부건물 철거 고유제를 끝으로 누구에도 이롭지 못할 과거지향
국수적 몸짓을 이젠 미래지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