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금융통화운영위원회가 발족한 이래 역대 200여명의
위원이 거쳐갔지만 금통위는 그동안 재무부가 상정한 안건의 대부분을
통과시키는 오욕적(?)인 전례를 남겼다.

지금까지 금통위에는 "부실기업양산기관""관치금융의 시녀""한은식객"이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별칭이 따라다녔다.

이와함께 국민의 재산권 침해를 사실상 주도해온 "유명무실한 통과기관""관
변경제학자들의 집합소"정도로 비하하는등 여러가지 비판의 소리가
높았었다.

이런 금통위의 위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 이번 한은법 개정논란의
핵심이다.

한은법 개정안에는 금통위안을 금통위원중에서 재경원장관이 제청하여
대통령이 임명하되 금통위의장이 한은총재를 겸직케한다는 것이다.

순수한 의미에서 따져본다면 한사람이 중앙은행을 대표하는 것이므로
"의장<>한은총재""한은총재가 의장"이 되는 것이다.

임명순서에 불과하므로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재경원에서 굳이 의장이 한은총재가 되는 순서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 바로 숨겨진 함정이 있는것 같다.

금통위의장을 위원회에서 호선에 의해 추천을 하는 것이 언뜻보면
민주적 과정으로 보일지 모르나 이는 어디까지나 금통위가 민주적이고
중립적인 인사들에 의해서 구성되었느냐에 달려있다.

개편안에는 금통위원중 정부추천위원이 전체 9명중 6명이다.

더구나 나머지 3명도 재경원의 입김을 받을수 밖에 없는 금융기관
추천위원들이다.

결국 금통위전체가 재경원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어있다.

재경원의 영향력으로 임명된 금통위원들중에서 금통위의장이 선출되고
그가 총재가 되기때문에 얼굴만 다르지 실질적인 오너는 다른곳에
있게된다.

형식적으로는 재경원장관이 금통위의장을 맡지 않는 것처럼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그 권한이 현재와 같이 그대로 유지되도록 하고 있다.

또한 경제부총리가 금통위의장을 겸직하는 것이 모양도 좋지않고
금통위의 위상을 더욱 높이는 격이 되어 이런 편법을 고안해 낸것
같다.

임명의 순서에 관계없이 중앙은행의 대표자는 국무총리의 제청에
의하여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동의를 얻어야 한다.

정부부처의 추천위원은 재경원을 포함하여 3명이내로 줄이는 것이
좋을것 같다.

위원과 의장의 임기는 5년단임으로 하고 중요한 금융정책의 결정에
관한 안건에 대해서 금통위원들이 발언한 내용을 분기에 한번씩
공개토록 하여 회의의 공공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이처럼 금통위의 위상제고가 형식적 명분에 불과할뿐 실질적으로는
금통위를 종전처럼 재경원의 산하기관정중로 장악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조항이 몇군데 보인다.

즉 금통위는 정부의 주요정책과 관련되는 사안은 정부와 협의하여야
한다는 조항(제39조1항)의 신설이 그중 하나이다.

현실적으로 금통위의 의결을 요하는 통화신용정책 관련업무중 정부의
주요경제정책과 관련되지 않는 사안이 몇건이나 될것인가.

이는 금통위를 재경원장관이 사전승인한 사항만을 형식적으로 의결
시행토록 하려는 의도로 밖에 볼수 없다.

또한 금통위의 의결사항을 집행하는 한은의 예산승인권을 재경원장관이
직접 보유하겠다는 것도 지나치다.

대부분 통화신용정책의 관련비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은 예산을
금통위에 맡기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일국의 통화신용정책을 결정하는 금통위를 믿지 못하는 것이거나
금통위의 수족을 묶어 두자는것 이외에 무슨 뜻이 있겠는가.

정부의 경제정책과 금통위의 통화신용정책과의 조화는 금통위의
의결사항에 대한 재경원장관의 재의요구권과 재의가 부결되었을
경우 대통령이 최종 결정한다는 조항(개정법 제39조2항)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할때 금통위의 독립만을 축소해석
하는 경향이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이란 정책수립의 금통위와 집행기관인 한은,감독기관으로서
의 은행감독원을 포괄하는 중앙은행 전체조직의 독립이라는 넓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금융정책의 권한집중을 막고 상호견제와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은행감독권을 중앙은행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중앙은행 조직의
범위를 협의로 규정하는데서 오는 오류다.

설령 이론적으로 권한의 집중이 우려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경우는
다르다.

전체 금융시장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불과한 실정에서
한은의 권한이 집중되면 얼마나 집중될 것이며 감독기능이 없는
중앙은행이 제 역할을 다 할수 있겠는가.

한나라의 경제정책수단인 조세 예산 금융 외환의 거의 모두를 행사하고
있고 금융자산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제2금융권의 감독권 마저
가지고 있는 재경원이 여기에 은행감독권 마저 독점할때 재경원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장치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통화신용정책의 수립 집행기능과 은행감독기능은 상호불가분의 유기적인
보완관계에 있으며 결코 대립 견제의 관계가 아니다.

금통위든 한은이든 그 고유목적은 "통화가치의 안정"이며 실물경제의 시각
으로 볼때에는 인플레의 억제라고 볼수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은 인플레 억제를 위해서는 욕을 얻어 먹더라도
좀 고지식하게 수도승과 같이 물가안정을 위한 최후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게 국민의 요구이다.

중앙은행은 은행의 은행으로서 금융시장의 안정과 신용질서를 위해서
은행에 대해 독자적인 감독업무를 수행하지 않을수 없다.

즉 자금을 빌려준 채권기관인 중앙은행이 자금을 빌려가서 사용하는
채무자인 금융기관에 대해서 감독을 하는 것이 다른 제3의 기관이
하는 것보다 가장 전문적인 감독을 할수 있는 것이다.

토지와 주택이 같은 분야라고 주택은행 주택공사 토개공이 통합될수
없는 것과 같이 금융분야라고 은행 증권 보험과 같은 이질적인 금융업무에
관한 감독을 통합 일원화하는 것은 감독업무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크게 훼손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하나의 감독기관에서 통합하여 감독하는 나라는 노르웨이
1개국 이외에는 그 유례가 없다.

국정의 최우선 과제를 행정규제완화의 작은 정부를 추구하고 있는
시점에서 앞으로 은행감독도 행정차원에서 개입과 지시 통제보다는
지도 예방 유도의 차원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내에서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중앙은행의 기능을 강화시키기 위한 한은법 개정이 오히려 감독기능을
분리시켜 그 기능을 약화시키려는 발상은 대단히 논리적 모순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먼의 지적대로 "현상유지의 횡포"가 관료사회에
건재하는 한 중앙은행의 독립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화도 요원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