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신용은행 박충선 상품개발팀장(34)은 요즘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는 각은행의 금리파괴상품의 구조를 분석하고 시장반응을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박팀장으로서는 늘상하고있는 일중 하나이지만 신탁시장을 둘러싼 시장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어 신상품개발 동향에 신경이 많이 간단다.

지난 92년초 장기신용은행은 중대한 금융환경변화에 부닥쳤다.

고금리시대였던 당시 시중은행들에서는 금리규제가 없는 신탁상품으로 돈이
물밀듯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특수은행으로 출발한 장기신용은행의 신탁상품수탁고는 보잘것없는
상태였다.

뒤늦게 신탁업무가 허용된데다 당시 지점수가 18개에 불과했다.

일반인들에 대한 지명도도 높지 않았다.

이때 비서실에 근무하던 박충선대리가 신탁부근무를 자원하고 나섰다.

경영학을 전공한데다 일본어에도 자신이 있어 일단은 외국의 금융상품을
참고로 새로운 금융상품을 개발해 보겠다고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박팀장은 우선 기존에 있던 스피드신탁과 노후연금생활신탁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노후연금생활신탁의 이름을 하이로신탁으로 바꾸고 적극적인 광고도 병행
하는등 다각적인 마케팅전략을 구사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당시 100억~200억원수준이던 이들 상품의 수탁고가 눈에
띄게 늘기 시작해 현재는 2,000억~2,300억원수준에 이르렀다.

지난해 7월 이자지급방법과 기간선택이 자유롭고 수시로 계약조건을 바꿀수
있도록 만든 마이티신탁은 수탁고가 벌써 4천억원을 돌파했다.

박팀장은 금융소득종합과세에 대비, 지난해 특정금전신탁의 한도를 1억원
이상으로 낮춰 주식투자를 대신해주는 주식형재테크통장을 개발해 놓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

박팀장의 연이은 상품개발에 힘입어 91년말 6,639억원에 불과하던 이 은행
신탁수탁고가 지난 1월말에는 2조4,714억원으로 급증했다.

대형시중은행의 신탁수탁고가 5조~6조원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절반수준
정도다.

그러나 31개에 불과한 지점수등을 감안하면 장은의 신탁업무도 대형시중
은행수준에 올라 왔다는 것을 알수 있다.

박팀장은 신탁부문을 강화하려는 은행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원이 주효했다며
겸손해 한다.

올6월 미국유학을 떠날 예정인 박팀장은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면 보다
독창적인 상품을 개발할수 있을것 이라는 자신감을 나타냈다.

< 김성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