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덕 재미변호사>

사법개혁에 관한 논란이 분분하다.

이같은 논란과 관련해 미국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을것 같아 몇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우선 사시합격자 또는 변호사 수를 증원하는 문제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첫째로 법학교육의 질을 고양시키는 교육개혁이 선행되지않고 사시합격자
수만 늘리면 법조인의 전문성 내지 질적수준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나라 법학도의 교육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청명하지만 세상구조는 잘 이해못할 머리속에 대학2년의 교양과정과
2년간의 법률공부를 부어넣다시피 하고 시험을 봐서 소위 "영감님"을
탄생시키는 속성과정이다.

대조적으로 미국의 법학교육은 4년제 대학에서 다른 분야를 전공한
후에 다시 전국의 명문대학의 상위 몇%에 들어야 입학할수 있는
그야말로 엄선의 과정을 거쳐서 사법대학원인 소위 로스쿨( Law
School )에 비로소 들어가며 거기에서 또 다시 목숨을 걸다시피하는
치열한 경쟁으로 1년에 한번씩 10~20% 강제퇴교의 갈림길에서 투쟁하며
3년간 전적으로 법률만 전공한다.

물론 우리 제도에도 사시합격후 훈련과정으로 연수원 2년과정이
있지만 그것은 일단 따놓은 당상에 실무훈련만 추가하는 것이지
문턱에도 가지 못하도록 퇴교시키는 정도는 아닌 것이다.

즉 미국에 변호사 수가 많다고 하여 변호사되기가 쉽다거나 그들의
전문성이 적은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둘째로 법률수요의 문제도 생각보다 훨씬 구조적으로 미국과는
틀리다.

우리는 송사나 있어야 변호사를 쓰지 사전 자문이나 대정부관계등에
이들을 사용치는 않는다.

게다가 우리사회는 전통적으로 송사를 기피해왔다.

미국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송사가 많다.

송사를 협상의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송사외에도 사업운영에나 행정적 외교적 업무에까지 변호사를 쓴다.

변호사의 상당수가 정부 공무원 또는 사업체 임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러하니 인구대비 변호사 수로 그들과 우리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며
우리의 변호사 수를 늘리기는 하돼 누구나 원하는 분야의 변호사를
다수의 풀( Pool )에서 경쟁원리에 입각해 선임할수 있는 정도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법학교육의 개혁은 제도적 장치의 개혁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제도의 측면에서는 7년정도의 고등교육을 받는 사법대학원 제도의
채택은 미래형 법조인의 자질향상을 위하여 당연히 요청된다.

그러나 그것이 꼭 미국식일 필요는 없다.

대학을 마치거나 사회생활의 맛을 좀 본후에 대학원에 가서 다시
공부함으로써 질의 심도와 다양성이 공급된다.

일례로 미국에는 대학에서 수학이나 물리학등 일견 판이한 분야를
전공한 사람이 변호사로서 매우 성공적인 예가 많다.

제도개혁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법학교육의 내용과 교육방법의
내적개혁이며 제도의 주체인 인간의 인성교육으로부터 접근해야
근본적인 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법학교육과 함께 국민에 대한 법률문화적 계몽이 병행하여야 한다.

생활의 법률화를 추구하고 상식이 곧 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건전한
사고방식이 존법의 첩경임을 알도록 대중을 교육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이 나라에도 법치주의가 뿌리를 내릴수 있고 과거의 획일주의와
배타의 인습이 점차 사라지고 진정한 세계화 개방화의 시대가 오는
것이다.

다른 것을 다른 것으로 그냥 인정해 주고 우리와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이 세상에 살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수준,사람을 죽였어도
공정한 재판에 의하여 유죄판결이 나가전까지는 무죄로 간주하는
심성과 풍토가 있어야 세계화된 국민일 것이다.

수요자인 국민의 권익보호와 개방된 사회에서 외국변호사들과 경쟁을
해야하는 법조인들의 입장을 생각하더라도 교육의 질을 중시해야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국제화 세계화의 인력배양이라는 좋은 부산물도 거두게
됨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따라서 신중히 점진적으로 그리고 가능한 범위내에서 변화를 추구하며
개혁의 목표를 국제사회에 적응하고 소통할수 있는 합리적인 정도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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