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적인 경영동업''.. LG그룹에 따라다니는 수식어중 하나다.

"LG"는 창업역사가 반세기를 넘는 만큼 여러가지 기록을 갖고 있다.

47년 설립된 락희화학(LG화학)은 국내 최초로 "럭키"라는 우리 브랜드의
화장품을 만들어냈다.

58년에 세워진 금성사(LG전자)는 흑백TV를 처음 국산화했다.

그러나 이런 "최초"시리즈의 기록보다 더 크고 깊은 의미를 갖는 게
"이성동업 반세기"의 전통이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아프다는 나라가 한국이다.

"동업"이 채 10년을 넘긴 경우를 찾아보기 힘든 게 한국의 사업풍토다.

동업은 커녕 형제간 부자간에도 재산다툼이 일어 갈라서기 일쑤다.

LG의 경우는 그러나 예외다.

얼마든지 이성간.사돈간에도 동업이 영속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잘 알려진대로 LG의 "오너"는 구.허씨 양대가문이다.

그 뿌리는 해방직후인 47년 락희화학 창업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목상으로 사업자금을 마련한 고구인회창업주가 무역업에 손을 댔다 그만
실패하고 말았다.

재기에 부심하던 구창업주에게 "락희"로 다시 일어서도록 밑천을 도와준
사람이 향리인 경남 승산의 만석꾼 허만정씨였다.

허씨는 구창업주의 장인인 허만식씨의 6촌형제이자 바로 아랫동생인
철회씨의 장인.

허씨는 구창업주가 화학분야 창업을 구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사돈은 사업역량이 있으니 내 아들 준구를 사람만들어 주소. 사돈과의
출자도 좀 하겠소"라며 쾌히 거액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LG그룹내 허씨가계의 "대부"인 허준구LG전선회장(73)이 그룹의
창업동반자로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그의 나이 24세때였다.

이후 락희화학의 사업이 번창하고 계열사의 가짓수가 뻗어나면서 허씨
형제와 자제들이 속속 그룹경영에 참여하게 된다.

지금도 그룹 임원의 4%가량을 구.허양가문이 차지하고 있다.

물론 허씨가문의 그룹발전에 대한 기여를 단지 "자본"과의 함수관계로만
국한할 수는 없다.

허준구회장은 락희화학의 창업이사로 경영에 참여해 초창기 화장품과
플라스틱사업 성장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이후로도 주요 계열사의 최고경영자를 섭렵하면서 "안방살림 관리"에 탁월한
솜씨를 보여왔다.

지금은 그룹총수를 제외하고는 서열1위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둘째동생인 허신구LG석유화학회장은 66년 해외여행길에서 가루비누를
발견하고는 국내최초로 가루비누를 만들어 "하이타이"란 이름을 직접 작명한
장본인이다.

그러면서도 두 집안사이에는 경영주도권을 놓고 단 한번의 갈등도 없었다고
한다.

왜일까.

우선 구.허가문의 철저한 "역할분담"을 그 비결로 드는 사람들이 많다.

그룹경영 전반에 관한한 최종적인 결정권은 구씨가문에서 맡고,허씨가문은
철저한 조언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한다는 불문율이 그것이다.

그룹의 오늘을 있게한 자본주인 허만정씨는 자손들에게 "경영은 구씨집안이
알아서 잘한다. 처신을 잘해 돕는 일만 충실하라"고 당부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물론 구.허씨 가문사이에 경영권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질 법한 상황이
없지는 않았다.

단적인 것이 69년 12월 31일 구창업주의 갑작스런 별세에 따라 후계구도를
급히 설정해야 할 때였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전혀 생기지 않았다.

두 가문은 만장일치로 창업주의 적장자인 구자경현회장의 2대회장 취임을
결정했다.

그리고는 이번,구회장의 후계자가 또다시 구씨가문의 "적장자"로 결정됐다.

이번에도 허씨가문의 전폭적인 협력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구씨가문에서도 허씨 가계에 대한 예우에 한치의 어긋남이 없어왔다.

그룹2인자인 허준구회장이 구회장과의 "동반퇴임"을 결정하자 허회장의
자리에 그의 장남인 허창수LG산전부사장을 무려 세단계 건너뛰어 앉히기로
한 결정이 단적인 예다.

이렇듯 두 가문은 일정한 역할의 선을 그어가며 상부상조하는 이성동업의
전통을 반세기이상 이어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그룹분위기도 당연히 "인화"가 제1의 덕목으로 강조될 수 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초스피드경쟁시대에는 신속한 의사결정이 요체로
지적되고 있다.

"구.허동반 3세경영체제"를 맞는 LG그룹이 "신속"과 "인화"를 어떻게
조화시켜가며 제2혁신을 이뤄낼지 두고볼 일이다.

<이학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