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두번 낙제한 뒤 목수와 막노동꾼을 전전하던 서밋테크놀러지의
데이비드 물러회장(46).

그는 사회의 낙오자에서 유능한 기업총수로 우뚝 선 재기의 전형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68년 물러회장은 보스턴과 에머슨대에서 연달아 낙제를 했다.

물러회장은 그뒤 버몬트의 한 스키리조트에서 수도관 매설인부로 일했다.

1년뒤에는 막노동꾼으로 건설현장을 전전했다.

"처음에는 재미도 있었죠. 그런데 어느날 불현듯 "이건 아니다" 싶더군요.
이런 일들을 하면서 보내기는 내 청춘과 머리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러회장은 이때가 바로 자신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됐다고 회상한다.

물러의 재기작전 1단계는 대학 재입학이었다.

교육받지 않고는 아무일도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젊은시절 낙제로 쫓겨났던 보스턴대의 야간학부에 입학원서를 냈다.

첫학기 등록금 1천5백달러는 친구들과 포커내기판에서 딴 돈으로 충당했다.

그러나 3년후에는 장학금과 함께 화학과 물리학 학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코넬대로 옮겨 물리화학 석.박사학위에 도전했다.

물러회장은 훗날 기업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여기서 맞게 된다.

레이저및 응용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이어 일리노이대에서 장학금을 받고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후 몇년간 물러회장은 샌디에이고 보스턴등지의 레이저관련 중소기업에서
일했다.

그는 여기서 다른사람들과의 공동작업에 염증을 느끼게 됐지만 큰 수확도
얻었다고 말한다.

"내가 그 회사사장들보다 못할게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 이런 결론을 내렸죠"

물러회장은 85년 보스턴대의 교수 2명과 함께 서밋을 설립했다.

생산품목은 동맥경화를 치료하는데 쓰이는 레이저장비.

여기에 필요한 자금 3백50만달러는 기관투자가들로부터 끌어 모았다.

그러나 그는 곧 레이저를 이용한 시각장애치료 관련 시장이 엄청난 잠재력
을 갖고 있다고 판단, 사업방향을 선회했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물러회장은 투자자들에게 더이상 자금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는 기업공개를 통해 6백만달러의 자금을 조성키로 결정했다.

이 전략은 성공했다.

기업공개 1년후 서밋은 미국의 연구센터에 레이저장비를 팔기 시작했고
유럽과 캐나다 중동지역에는 컴퓨터 빔을 이용해 환자의 각막을 제거하는
레이저 치료법을 수출했다.

이 치료법은 기존 수술법과는 달리 메스를 대지 않고도 각막을 제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서밋은 영국의 런던 버밍엄 에든버러등 3곳에 레이저치료 센터를 개설했고
지금까지 총 25만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물러회장은 이 치료법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얻는대로 미국에도
센터를 개설할 계획이다.

서밋의 미래는 이제 레이저치료법의 FDA 승인과 미국시장에서의 성공여부에
달려 있다.

이 어려운 시험앞에서 물러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끝도없는 블랙홀에 빠져드는 듯한 절망에 놓인 적이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단한번도 포기한 적은 없었다"

< 노혜령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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