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표 <딜로이트&투쉬 회계법인 파트너>

얼마전 일본 고베에 대규모 지진이 났을때 미국 신문과 TV는 연일
지진보도에 열중한 적이 있다.

그 피해의 규모가 엄청나고 미국도 지진피해가 잦은 나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러한 보도의 내용보다는 보도자세에 무언가 전혀 새롭고
다른 점이 있어 필자를 놀라게 한다.

미국생활이 벌써 20년째에 접어들고 그동안 계속해서 미국 매스미디어의
보도자세를 관심깊이 보아온 필자에게 고베지진은 전혀 새로운 경험인
것이다.

미국사람들은 고베의 지진을 마치 캘리포니아의 지진인 것처럼,아니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바로 자기가 사는 옆동네에서 일어난 지진이기라도
한것처럼 가깝게 보도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가깝게 보도한다는것은 지리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이 그렇다는 말이다.

마치 이웃동네가 폐허가 되고 이웃사람이 큰 피해를 입은 것처럼
안타까워하고,안쓰러워하고,걱정한다는 이야기다.

신문기사에서도 그것을 읽을수 있고,특히 TV뉴스에서는 뉴스캐스터의
표정이나 기사를 다 읽은 다음 덧붙이는 촌평에서 뚜렷이 알수 있다.

예를 들면 보도가 끝나고 뉴스캐스터가 "이재민과 희생자 자족에게
우리의 가슴아픈 심경을 전합니다"라고 말하면 주변의 모든 캐스터들이
평소처럼 웃거나 농담하지도 않고 마치 자기자신들의 가족이나 친지가
희생을 당하기라도 한양 다함께 숙연한 표정을 짓는 것이다.

매스미디어의 보도뿐만이 아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반 시민들의 반응이다.

먼나라에서 벌어진 천재지변으로 단순한 흥미를 갖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형제나 친지가 변을 당한 것처럼 가슴아파하고 걱정한다.

예를 들면 지진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뉴욕시 교외인 서포크군에서는
군수가 공회당에 나가 군민들에게 고베이재민 구호금품을 모으자고
호소하는가 하면 여기저기 시민단체에서도 이재민돕기운동을 시작하였다.

미적십자사나 구세군등 사회봉사단체에서 앞장서고 나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봉사단체가 아닌 시민단체에서 너도나도 고베를 돕자고
나선 것이다.

또한 각 기업체에서도 직원들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하는가하면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자발적인 모금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모두가 자연발생적인 이웃돕기운동인 것이다.

이제 세계는 한 이웃이 되었는가,거리는 멀어도 사람들은 세계시민으로서
모두들 가깝게 느끼는 것인가,아니면 미국인들이 유독 일본에 대해
가깝게 느끼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일본에 가깝게 느끼는 것일까.

천재지변으로 말하면 최근에도 고베의 지진보다 훨씬 피해가 큰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92년 방글라데시의 홍수도 그렇고,90년 중국의 지진도 그렇고,모두
고베지진보다 인명피해가 몇십갑절 몇백갑절 많았다.

작년 1월 캘리포니아의 지진이 큰 뉴스였고 특히 피해지가 영화배우와
연예인이 많이 사는 로스앤젤레스 북쪽지역이었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었다.

그러나 어느때도 이번과 같은 쏟아지는 온정,깊은 애도감의 공공연한
표현같은 것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있었다해도 이번과 같은 규모가 아니었다.

일본의 경제적 위상때문인가,사람의 목숨이라도 다 같은 사람의
목숨이 아니고 부자나라 사람의 목숨은 더 많은 동정심을 유발하게
하는 것일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누구나 자기의 상대적 위치를 항상 알고
있고 거기에 맞추어 행동하게 되어 있다던 말이 생각난다.

그래서 뉴스도 항시 부자나라에서 가난한 나라로 흐르게 마련이라는
매스컴이론도 생각난다.

그래서 뉴욕 런던 파리발 외신은 많은데 모가디슈 르완다발 외신은
엄청난 인간도륙이나 있어야 비로소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본의 경제적 위상이 이번 고베지진을 맞아 세상사람들로부터
받는 관심과 동정에 무관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미국언론은 계속해서 질서정연한 고베시민,약탈 절도행위가 없는
지진현장등을 보도한다.

또 그러한 일본의 사회 현상에 대해 지극한 존경과 경의를 보낸다.

여기에 우리나라가 배워야 할 고베지진의 레슨이 있는것 같다.

우선 경제적인 일등국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걸맞는 높은 시민의식을 갖추어 천재지변의 혼동속에서도
질서정연하게 제 할일에만 몰두하는 일등국민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세계의 모든 일등국 시민들이 우리국민을 가깝게 느끼고
경애하게 될것이다.

올들어 새로 시작한 우리의 세계화가 완성되면 그렇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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