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한 흑인운동가 말콤 엑스( Malcolm X )의 본명은 말콤 리틀
(Malcolm Little )이었는데 "리틀"이란 성은 그의 조상이 노예였을때
주인의 성을 물려받은 것이어서 "아무것도 아니다"란 의미의 "X"로
고쳐버렸다고 한다.

스탈린은 본래의 성이 "주가쉬빌리"였다.

그러나 공산주의자가 된뒤 "강철같은 사람"을 의미하는 "스탈린"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다.

이들의 개성동기야 어떻든 한국인은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다.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거나 단언해서 말할때 "성을 갈겠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인의 성중시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선조의 선비들은 자신이 위로는 천백세 조상의 결론이며 아래로는
만억대 자손의 발단이라는 신념속에서 살았다.

그래서 한국인에게는 조상이 물려준 성과 웃어른이 지어준 이름은
그만큼 "자존"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 되어 버렸다.

일제때 가솔을 이끌고 고향을 떠나 간도로 갔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창씨개명을 하지 않기 위해 간 사람들이다.

세계 각국으로 이민간 한국인들 중에서도 성까지 바꾼 사람은 드물다.

개화기에 기독교인이 돼 본명을 그와 비슷한 음의 한자로 만들어
호적에 올린 예는 더러 있다.

대위( David ) 삼열( Samuel ) 요한( John ) 필립( Philip )
활란( Helen ) 등이다.

성은 바꾸지 않았지만 이들의 이름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몹시 냉소적
이었다.

외국인이 한국식 이름으로 바꾸어 행세한 예도 많다.

외교관인 독일인 묄렌도르프는 목인덕,역시 외교관이었던 미국인 찰스
W 리젠더는 이선득, 한국학의 시조인 제임스 스카스 게일은 기일, 언론인
E T 베델은 배설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썼다.

몇몇 예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모두 사대주의나 허영심때문에 서양식이나
한국식 이름을 쓴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스티브 한" "블라디미르 고" "제임스 권"식으로 외국이름을 지어부르는
국내 수출입 업체의 회사원들이 요즘 부쩍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외국인이 부르기 쉽고 친밀감을 주기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의 변이라고
한다.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고는 해도 아무래도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나 민족이나 개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세계화는 "종속"을 뜻하는
것이 되고 만다.

세계화는 동질화 획일화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로베르토 문"
"소냐 김" 등 젊은 사원들이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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