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에서 "매입"으로-.

국내 업계에 "기술매입시대"가 열리고 있다.

외국선진기업으로부터 시혜적 차원에서 이전받던 기술확보 방식이 이제는
당당히 기술을 사들이는 적극적인 형태로 변하고 있는 것.

이유는 간단하다.

날로 "변화"의 템포가 빨라지고 있는 기술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다.

"도입"-"자체기술로 소화"-"응용기술 개발"의 과거 기술확보 방식은 상당한
투자와 시간을 요구해온 사실이다.

당장은 비용이 좀 들기는 해도 필요한 기술을 통째로 사들이는게 궁극적인
"기술생존"을 위해 불가결한 상황이 됐다는 측면도 있다.

이를 위한 기술사냥의 방식은 여러가지다.

<>M&A(기업인수및 합병) <>지분참여등 돈으로 경영권에 참여하는 방식과
<>현지인으로 구성된 해외 R&D전문기업 설립으로 기술노동력을 매입하는
형태도 있다.

또 "나"의 기술을 팔아 "적"의 기술을 매입하는 전략적 제휴도 유용한
수단중 하나다.

기술 조기 확보의 수단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은 M&A다.

회사와 기술을 송두리째 사버리는 것이다.

현대전자는 최근 미국 AT&T-GIS사 비메모리반도체부문(구 NCR사)을
3억4천만달러에 매입했다.

대우자동차는 영국 IAD그룹의 자동차연구소를 사들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술 인력장비를 한꺼번에 사버렸다.

M&A의 장점은 즉시 사용가능한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현대전자의 경우 AT&T-GIS사 인수로 올해부터 당장 비메모리분야를 혁신적
으로 강화할 수 있게 됐다.

M&A의 또다른 특징은 특허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회사인수와 함께 지적재산권에 대한 모든 권리가 같이 인도됨으로써
자연스럽게 특허권을 확보하게 된다.

삼성전자는 작년말 미국의 ATM(비동기전송모드)교환기 핵심부품 개발회사
인 IGT사를 인수했다.

ATM교환기는 정보고속도로망 구축의 핵심 장치.이 분야에서 "특허시비"가
발생할 경우 삼성의 정보통신분야 진출계획은 바닥부터 흔들리고 만다.

삼성전자는 과거 반도체분야에서 톡톡히 혼이 난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IGT사 인수를 통해 아예 ATM분야의 기본 특허기술을 사버린 것이다.

기술매입의 또 다른 형태는 지분참여다.

어떤 면에서 M&A보다 더 적극적인 기술확보 방식이다.

M&A가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지분참여는
잠재력이 큰 기술을 얻기 위한 방안이다.

LG전자(금성사)가 다국적 멀티플레이어 제조업체인 3DO사에 1천만달러를
투자해 지분 3.04%를 참여한 것이 좋은 예다.

멀티미디어의 핵심기술을 가진 선진 업체와 공동개발체제를 구축해 미래
기술을 습득하겠다는 전략이다.

해외 R&D전문회사 설립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간 방식이다.

현대전자는 미국에 4개의 연구회사를 세웠다.

그중 하나인 이미지퀘스트사는 LCD(액정표시장치)분야,레이저 바이트사는
광학디스크 드라버만 개발한다.

기술개발의 전략화를 위한 "패키지형 R&D회사"인 셈이다.

적극적인 기술확보 전략은 돈으로 매입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기술개발인력에게 동기를 부여해 "의욕"을 자극하는 경영기법도 시도되고
있다.

현대전자가 지난해부터 채용한 "스톡 옵션(Stock Option)제"가 좋은예다.

스톡 옵션제도는 연구개발프로젝트가 달성됐을 경우 회사주식의 일정 비율
을 해당 연구인력에게 배정하는 방식.

이 회사 미국 현지법인인 HEA사는 지난해초 연구원들에게 주식 10%를 배당
하겠다고 통보했다.

"프로젝트가 완성돼 사업이 일정수준에 달했을 경우"란 단서를 붙였다.

일종의 동기부여 전략인 셈이다.

이밖에 자사보유기술과 경쟁사 기술을 "물물교환"하는 전략적 제휴도
적극적인 기술매입의 한 형태이다.

삼성전자가 일본 도시바사와 메모리반도체기술과 비메모리반도체기술을
서로 주고 받기로 계약한 것처럼 말이다.

국내 기업들의 주요 기술확보방식이 "도입"에서 "매입"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은 선진국들의 기술이전 회피 추세와도 무관하지 않다.

전자 자동차등의 분야에서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한국업체들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는 선진국 기업들이 "기술협력"을 꺼리고 있는 것.

또 남의 기술을 받아서 개발해 봐야 "만년 2등" 이라는 것을 자각한 국내
업체들의 인식 전환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현대전자 박종섭 부사장은 "기술도입은 결국 기술종속을 가져올 뿐"이라며
"개발연대 때는 어떤 기술이든 갖다 쓰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핵심기술
을 확보해 기술자립을 이루지 않고서는 2단계 도약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고 말한다.

"기술 매입이든 개발이든 그 방법이 아니라 확보된 기술로 나타난
결과가 중요한 것"이라는게 그의 얘기다.

< 조주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