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 < 국토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지난연초 대통령기자회견 석상에서 언급된 부동산실명제에 대해
끊임없이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1월9일 재경원장관이 발표한 원론적 수준의 시행방향 이외에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정부방침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까지의
논의들은 대체로 추측이상의 수준을 넘지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직접 이해가 얽힌 당사자들은 물론 많은 시민들도 적지않게
혼란스러웠던 것같다.

다만 최근 언론을 통해 간헐적으로 전해지는 정부측의 구체적 예외적인
명의신탁을 인정치않는등 원칙에 충실하게 제도를 운영하겠다는
정부의 방향은 일단 개인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한편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책의 수립과 운용방향설정이 다소
즉흥적이고 여론에 너무 좌우되는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지을수
없다.

물론 정책의 구체화과정에서 광범위한 여론을 반영하여 보완하는
방법을 나쁘다고만 할수없다.

그러나 반대로 시민들 사이에는 부동산실명제 실시를 위한정부의
사전 검토가 미흡했거나 또는 입장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시민들
의향을 떠보기 위해 불쑥 던져본것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초리도
상당한 듯하다.

어쨌건 이제 상당히 구체적인 시행방안들이 거론되기 시작했고 정부도
조만간 법률시안을 정식으로 제시하겠다고 했으나 보다 심도있는
논의가 뒤따를 것으로 기대한다.

말 그대로 부동산실명제란 다름아닌 부동산의 소유.거래를 본인의
이름으로 하도록 한다는 극히 당연하기 짝이 없는 제도이다.

이렇듯 당연한 일이 사회적으로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는 현실이
사실은 더 충격적이다.

너무도 오랫동안 비정상이 정상인 양 활보할수 있었던 우리사회
전반의 모순이 극명하게 노정된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부동산실명제는 한편으로 극히 당연한 원칙의 재확인이지만
어쩔수없이 경제정의 회복을 위한 개혁조치라고 말할수밖에 없다.

정의의 회복이란 근본적으로 잘못되고 옳지못한 것을 제거하는 일이기에
편의와 효율이라는 몰가치적인 개념의 개입을 허락치않는다.

따라서 부동산실명제의 실시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소수인의 은닉제산
처리를 어디까지 관용해 주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동안
법과 원칙을 지켜온 대다수 선량한 시민이 더이상 불이익을 받지않도록
정도를 확립하는갓이다.

즉 형평성 공정성의 조속한 확보야말로 제도 정착의 관건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예의를 인정한다 보면 실명제는 늘 그자리에 맴돌수밖에
없다.

여기에 개인과 기업이 다를수 없고 만약 이제까지 다르게 취급되어
왔다면 그 잘못된 관행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한다.

기존의 토지및 부동산정책도 부동산실명제의 실시를 환골탈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의 뇌리속에 부동산하면 무언가 깨끗치못한,그리고 어딘지 부정적인
이미지가 우선 연상되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실은 과거 너무나 오랫동안 부동산분야가 비리와 부정속에 방관,방치
되어온 까닭이다.

그간의 정책 역시 왜곡되고 부실한 시장을 전제로 하여 부정적인
시각에서 접근되어 온것이 사실이다.

모든 문제를 다 포착할수가 없으니 요행 한건 걸리면 일벌백계주의로
호되게 다투어 왔다.

그러나 그 틈에서도 정작 문제될 사안은 이리저리 편법을 동원하여
빠져나가곤 하기 때문에 오히려 형평성이 더욱 파괴되는 결과가
되곤 했다.

이제 실명제가 전면 실시되고 시장전반이 정상화되면 이와같이 투기
억제에 치중된 과거의 정책운용은 전향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세제나 기타 정책수단들도 소수의 이단자를 염두에 둔 파행적 운용이
아니라 시장전체를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수단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정상적인 거래까지 위축시키는 거래허가제라던가 명목상 과도하게
높게 책정된 몇몇 세제의 세율구조도 재고되어야할 것이다.

새로운 부동산정책은 소유및 거래에 관한 정확한 정보에 기초하여야
하며 최근 완성된 토지종합전산망은 이러한 목적에 훌륭히 활용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껏 주택및 건축물에 관한 전산화 추진은 매우 미진하고
정보의 질적수준 또한 우려할만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보다 발전적인 부동산시장관리를 위해서는 이 분야의 개선 노력이
시급히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금년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가기로한 부동산실명제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문가및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국민적 합의를 얻어야할 사안이 아직도 많다.

개인이나 기업 가릴것 없이 장기적인 국가의 발전과 깨끗한 사회의
조성을 위해 눈앞에 보이는 사사로운 이해를 제쳐두고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제도의 구체화과정에 참여하여야 한다.

정부 역시 진지한 자세로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해 경청하고 국민전체의
복리차원에서 신중한 판단이 있어야 한다.

이제까지 보여주었던것 같은 입장부재의 불투명한 인상도 바람직하지
못하지면 명분논리에 집착하느라 국민의 일상생활을 어렵게 하고
불필요한 범법자를 양산하는 우를 범해서도 곤란하다.

실명제는 궁극적으로 국민을 위한 제도이어야하며 정부의 개혁건수를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