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동네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이 노래를 부르며 다녔던 강남의
신천국민학교가 30여년 전에 있었던 곳은 지금의 잠실대교 부근 한강
고수부지 언저리였다.

그 당시 필자가 살았던 신천벌은 한강에서 석촌 호수쪽을 끼고 돌아
탄천으로 합류하는 샛강에 둘러쌓인 지금의 여의도같은 섬이었고,
섬 안에는 잠실 신천 삼성 등 세 마을 6백여 가구가 농사를 지으며
오손도손 한식구처럼 살았었다.

필자를 포함한 신천국민학교 5회 동기생들은 고작해야 1개반 30명이
전부였는데 필자의 기억에는 학교가 파하면 학교 옆의 한강 백사장에
나가 수영도 하고 고기도 잡았는가 하면 갈대숲을 지나 나룻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 스탠드 대신 미류나무가 둘러서 있던 서울운동장에서
축구시합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70년대 강남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섬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고향을 떠나거나 논과 밭을 덮어가는 빌딩숲사이에서 빠쁜 도시인으로
탈바꿈해야 했고, 그 와중에서 한식구처럼 살던 6백여 가구는 점점
단절의 벽이 높아졌다.

필자의 동기생들은 이렇게 희미해져 가는 고향을 몹시 안타까워 했고,
그래서 연락이 닿는 친구들이 동창회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남으로써
옛정을 이어왔다.

자주 만나다보니 자연 옛날 얘기가 우리들의 "안주"였고, 그러다 그냥
우리들만 만나고 말 것이 아니라 모두 장년이 된만큼 좀더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데 뜻을 같이하게 됐다.

그래서 처음으로 펼친 사업이 6학년때 은사이신 임천호 선생님을 찾아
뵙고 매년 사은회를 갖는 일이었다.

그일을 수년간 해오면서 서로간에 감격도 하고, 애틋한 정이 깊어지면서
우리는 사업범위를 더욱 확대하기로 결의했다.

지금 우리 동창회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두가지다.

먼저 각 가정을 뒤져 옛날 사진들을 모으고 있다.

이것들을 모다 사친첩을 만들어 나눠줌으로써 그당시 한식구처럼 살던
고향사람들에게 예전 고향의 모습을 되돌려 주는 사업이다.

그리고 지금은 노인이 되신 그당시 어른들을 위해 매년 경노잔치를 벌여
그분들의 회포를 풀어드리자는 것이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또 다른 사업
이다.

신천국민학교 5회 동창회는 현재 건축업을 하는 안용호 양진만, 각자
개인사업을 하는 조윤석 허만복 양성배 김종일 김용식 김건철 김해용
문경승, 프로덕션을 운영하는 홍경택, 서울 근교에서 농사를 짓는
이명석 등 17명이 참여하고 있다.

필자에게는 특히 이 글을 계기로 지금은 중년의 주부가 됐을 김갑숙
송순자 등 나머지 13명의 동창들과도 연락이 닿아 모두 한자리에
모였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