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이 있다.

냉절시절 미국이 중국과 전격적으로 국교를 수립한 것도 바로 이 논리
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중국은 소련과 대립하고 있었으므로 미국의 적인 소련과 대립하고
있는 중국은 "같은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확대시키면 "적에 동조하는 세력은 적"이라고 할수도 있다.

우리 정치사를 보면 결과적으로 적이 되고만 경우도 없지않았다.

그러나 일률적으로 모두 그렇게 단정을 내릴수는 없는 일이다.

남북이 반세기나 대치하고 있는 현 우리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을 논의 할
때 마다 하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이 이같은 논리와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종전의 국가보안법(1963년6월10일)과 반공법(61년
7월3일)을 폐지하고 새로 제정한 법률(80년12월31일)이다.

국가보안법은 법률적 측면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요소를 내포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4파동"이라고 할수있다.

58년 제30회 정기국회에서 여야는 국가보안법개정안을 둘러싸고 대치하고
있었다.

정부가 제출한 이 개정법안에 자유당은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는 간첩을
색출하기 위해"무수정통과를 주장하였고 민주당은 "법조문의 객관성이 부족
하며 공권력이 임의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전면거부의 태세였다.

결국 12월24일에 "경호권"을 발동하여 야당의원을 의사당 지하실이나
유게실 등에 연금시킨채 자유당 단독으로 통과시키고 말았다.

이것이 우리 헌정사에 유명한 "24파동""보안법파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편 북의 평양당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그들의 "적화야욕"에 장애가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 작년 3월에는 미국의 토마스 허바드국무부 부차관보가 보안법의 폐기를
주장하였다가 우리 정부의 반박으로 해명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하였다.

며칠전 부산지법은 국가보안법위반사건의 1심선고공판에서 보안법의 일부
위헌제청 결정을 내리고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였다.

지난 90년에 헌재가 한정합헌결정을 내린뒤 91년에 개정된 법이므로
헌재가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다만 우리로서는 안보와 합리적인 법치,모두가 중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