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담 = 강영현 < 과학기술 부장 > ]]]

"VDT서비스가 본격화되면 지금 나와있는 멀티미디어 제품중 3분의 1은
필요가 없게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즘은 바빠서 죽을 시간도 없다는 멀티미디어 전문업체 (주)옥소리
김범훈사장(37)은 인사도 건네기전에 머리속에 맴돌고 있는 고민부터 먼저
털어놓았다.

"제법 겨울날씨답게 공기가 맵네예"

모처럼 서울 나들이라는 김사장의 첫인상은 우선 야무지다는 느낌을 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각진 얼굴에는 피곤이 약간은 배어있지만 그의 눈(안)
에는 자신감과 함께 신명이 자리잡고 있었다.

외모로만 보아서는 컴퓨터 특히 첨단분야인 멀티미디어를 하는 사람같아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이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KAIST나 외국 대학을 나와 논리적이고
지적인 화법을 구사하며 국제화된 세련된 매너를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우시장에서 느낄 수 있는 촌스러움이 풍긴다.

"FM칩과 MIDI음원칩을 합친 통합 카드를 지금 사운드카드보다 싼값에
내놓아야 하는데.... 영상분야에서는 일반 TV화면과 컴퓨터 화면을 겹쳐
보여주면서 PIP기능을 내장한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그는 바깥 세상으로 나와도 여전히 부천 연구실에서 끌어안고 있던 문제를
쉽게 털어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까?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쉴새없이 질문을 퍼부어댔다.

"세상이 하도 빨리 바뀌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요즘 세상은
''X4''으로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같아요"

"X4"은 난데없이 무슨 말인가?

기술발전이 워낙빨라 예전보다 4제곱이상의 속도로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는 설명이었다.

어떤 분야에서건 기술발전이 연간 4제곱이상 발전하고 소비자들의 요구나
의식의 흐름도 그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자칫 이 흐름을 놓쳐버리면 영원히 소외되어 미아가 됩니다. 이미 멀리
사라져버려 자신이 왔던 곳을 볼 수 없기 때문이죠"

이런 시대일수록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면서 살고 있다고 덧붙인다.

"라디오나 워크맨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10V(볼트)입니다. 손으로 만져도
죽지 않을 정도죠. 세탁기 냉장고는 1백V이상의 전기를 사용합니다. 라디오
를 만드는 기분으로 세탁기를 만들다가는 사람 죽이기 십상이죠. 이들을
똑같은 설계방식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멀티미디어시대에서는 이같은 변화가 너무나 빨리 오고 있다는데
있다.

"6개월전에 소비자들을 생각해 제품을 만들어서는 실패합니다. 이미
소비자들은 저만큼 멀리 떠나가 버렸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하던 시대는 지나가 버렸어요. 멀티미디어를 만드는 기업은 매일같이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합니다"

92년 1월 처음으로 PC에서 소리와 음악이 나오는 사운드카드를 발표하고
멀티미디어에 첫걸음을 내디딘 옥소리는 그만큼 많은 선택을 했고 그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3년 남짓동안 20여가지 이상의 사운드 카드를 발표했으며 관련 프로그램만
수십여종이 넘는다.

TV영상보드, 비디오 오버레이보드와 비디오 CD로 영화를 볼 수 있는 "CD
비전"등 영상관련기기는 10여종을 개발했다.

또 PC용 스피커, 앰프, 라디오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CD롬 타이틀만도
50여종을 웃돌고 있다.

최근에는 자체 기술로 설계한 멀티미디어 CD롬 드라이브를 만들어냈다.

하나의 제품 성공을 알리기 위해서는 10여번 이상 실패를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매일같이 선택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다.

전체 제품군을 놓고보면 일개 중소기업 혼자서 감당해 낼 수 있었던
일은 아닌것 같다.

"하루에 8시간을 일하는 사람과 하루 16시간을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이 10년의 세월이 지난 후 두 사람은 같은 나이를 먹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의 능력면에서는 4~5배 이상의 차이가 날 것입니다"

김사장은 옥소리 직원들과 함께 지난 3년동안 일속에 파묻혀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털어놓는다.

"아무리 재미있는 것이라도 한가지 주제를 한시간동안 생각하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실제로 몇년동안 한가지 일에 빠져서 산다면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능력은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옥소리가 그동안 멀티미디어에 푹 빠져 살았음을 이렇게 설명한다.

"벼는 농부의 거름걷이를 통해 자란다고 합니다. 벼의 종자가 아무리
좋아도 농부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잘 자랄턱이 없습니다. 어떤 일에
얼만큼 정신을 집중하고 그 일을 열심히 했느냐가 승패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일년동안 오로지 벼농사를 짓는데 일심한다면 그 벼농사는
잘못될리가 없습니다"

김사장은 조부에게서 벼와 농부의 거름걷이 얘기를 듣고 자랐다.

경남 거창군 가조면에서 2남 1녀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사장은 선친이
시골에서 운영하던 작은 영화관 영사실에서 필름 바꾸는 일을 도와주며
"시네마 천국"을 통해 바깥 세상을 보았다.

이곳에서 그는 "과거를 볼 수 있는 기계" "사람과 영혼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기계"를 만들겠다는 꿈을 키워나갔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한의사를 희망했던 김사장의 운명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우연한 기회에 바뀌게 된다.

부산에 여행을 갔던 그는 금성사에서 고등학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1년
과정의 기술연수생을 모집하는 공고를 보고 선뜻 응시했고 당시 2백대1의
경쟁율을 뚫고 합격했다.

78년 기술 연수를 받은 그는 이듬해 금성사 중앙연구소로 발령받았다.

그곳에서 낮에는 박사 선배 연구원들의 뒷치닥거리를 해주고 밤에는
연구실의 기자재를 만져보고 싶어 다른 사람의 당직까지도 일부러 떠맡아
가며 모두 퇴근한 연구실에 혼자 남아 밤을 새웠다.

복사기 전동타자기 자동판매기등을 연구하다 모르는게 있으면 다음날
선배들에게 커피 심부름이나 복사일을 대신해주며 의문을 풀어나갔다.

6개월후 그는 "자동판매기의 코인 센스"에 관한 특허를 출원할 수 있었다.

매일같이 세탁기 에어컨 냉장고등을 뜯어보고 조립하며 그는 수없이
많은 신제품을 만들어내는 꿈공장을 지었다 부수기를 거듭했다.

그는 "손이 닿으면 자동으로 꺼지는 어린이용 안전선풍기" "마이컴
냉장고"등 많은 발명품을 만들었으며 국내외 특허 1백여가지를 출원했다.

85년 금성사를 퇴사할 때까지 3차례 사내 발명왕을 차지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개발에 자신이 붙으니까 욕심이 나데요. 직접 나 자신의
개발품을 갖고 인생에 승부를 걸고 싶었던 거죠"

그는 "벽에 붙이는 전자 스위치 센서"를 개발해 직접 판매를 시작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개발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배웠습니다. 기업 경영은 또 다른 많은
경험과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거죠"

회사운영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에 들어가 경험을 쌓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지난 87년 옥소리의 모태인 삼호전자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그는 관리자로서의 경험을 쌓아나갈 수 있었다.

89년 노사분규로 회사가 진통을 겪으며 쓰러져 가자 그는 이를 인수한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습니다. 몇달동안 정상 조업을 하지못해 거래처는
끊기고 외국 바이어들은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는 당시 2백여명에 달했던 회사의 인원과 조직체계를 새롭게 정비해
30여명 규모로 독립회사를 만들어 분사형태로 기업을 재조직하고 회사
간부들을 각자 기술특성에 따라 분사 사장으로 임명했다.

각 회사의 독립성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상호연관을 갖는 연합체를 조직
했다.

"당시에는 작은 규모의 회사로 잘게 쪼개는 분사가 노사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연구개발 인원들만을 삼호전자에 남겨 새로운 PC용 사운드 카드
개발를 진두진휘하기 시작했다.

외산 제품만이 국내에 유입되던 시절 순수 자체기술로 PC용 음성및 음악
카드인 "옥소리"는 만들어졌다.

"모든 제품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끈기와 인내의
결과일 것입니다"

지금도 김사장은 개발은 기술력과 함께 하나의 사물을 깊게 생각하는
집착에서 나온다는 것을 믿는다.

"제가 즐겨 쓰는 개발방법론은 바로 "시행착오법''입니다. 앞이 캄캄한
낭떠러지에서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수십번의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다
보면 새로운 해답이 나옵니다. 성공할 때까지 버티고 앉아있는 끈기가
중요한 것이죠"

이제까지 김사장은 문제가 생겼을 때 한번도 물러서거나 돌아가본 기억이
없다.

어려움이 생기면 그 고통을 철저하게 즐기며 일의 보람을 느끼는 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사운드 카드에서 잡음이 생겼을 때는 직접 인두를 들고 PCB기판을 납땜하며
잡음의 원인을 찾아냈다.

PC통신망 사용자들이 옥소리 제품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꼬박 밤을 새워
사용자들에게 일일히 전자우편을 보내며 의견을 구하고 토론을 해나갔다.

"우리나라가 일본을 앞설수 있는 기회가 지난 80년대초에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냉장고 세탁기 TV등 모든 제품들이 로터리 방식의 스위치를 돌리는
시대였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버튼식을 우리가 먼저
해냈으면 전자분야는 우리가 앞서 성공할 수 있었을 겁니다"

엔지니어로서 아쉬움이 남는 과거라고 김사장은 회고한다.

그는 지금의 상황이 80년대 초반과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멀티미디어시대가 열리기 시작하는 지금 시점은 그때와 꼭 마찬가지로
전세계 기업이 일직선 출발선상에 똑같이 서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진 것이죠. 지금은 누가 한발 앞서 나가느냐가 한시대를 이끄는
승자가 되느냐를 판가름합니다. 반도체 하나를 앞장서서 개발하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같은 기회는 김사장에게도 똑같이 주어지고 있다.

"국경이 허물어진 멀티미디어 시장에서 중소기업이 외국의 거대기업과
싸워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은 자신만의 비장의 무기를 하나라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몸집이 큰 코끼리도 작은 송곳으로 찌르면 도망가기 마련입니다.
물론 곧 다시 돌아옵니다. 그 시간을 이용해 자신의 영역을 좀 더 넓혀야
합니다"

그는 작은 송곳을 다듬어 내놓을 수 있다면 중소기업에도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한명의 연구개발자가 아이디어를 올바르게 내놓고 세계시장에 한발
앞서면 국내 대그룹의 매출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새로운 거대한 시장이 멀티미디어 분야에
형성되고 있으며 "신합병주의"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고 말을 이어갔다.

"기존 시장을 파괴하는 새로운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새
제품의 강자는 후속 제품들을 통합하고 관련 기업들을 주도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게 됩니다"

한 예로 그는 최근 쏟아져 나오고 있는 비디오 CD관련 타이틀이 기존
음반점보다는 컴퓨터 유통점을 통해 판매되고 있는 것을 꼽았다.

옥소리가 사운드 카드 분야에서 앞서 나가자 자연스럽게 CD롬 타이틀을
만들어보라는 권유와 협조가 관련업계로부터 쏟아져 들어왔다.

최근에는 영상기기 개발로 인해 비디오 CD 제작과 유통 판매까지 떠맡고
있다.

"확률은 1%지만 20년후면 세계에서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합니다"

김사장은 처음 자신이 PC 사운드 분야에 뛰어들었을 때 주변에서는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1% 미만이라고 지적했다며 자신감에 찬 웃음을 내보였다.

1%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온 옥소리는 창업3년만에 연간매출 30억원
에서 6백억원규모로 자랐다.

''1%확률''속에 살고 있다는 김사장은 3~4년쯤후에는 5~6개의 계열기업이
나올 것을 기대하며 증권공부도 한다고 말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