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계섭 < 한국증권경제연구원 원장 >

국제화와 국가경쟁력강화에 익숙했던 우리에게 세계화라는 단어는 어느날
갑자기 생소하게 다가왔다.

시장개방과 함께 안방에서 세계적 기업들과 사투를 해야하는 우리들의
경쟁력은 어떻게 창출되어야할 것인가.

자유화와 개방이라는 거센 파도앞에서 총력을 집중해야 하는 금융산업중
에서도 아직 유치한 증권산업의 대응방향을 제도적인 측면에서 검토해
보자.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앞두고 우리는
개방과 자유화를 강요가 아닌 선택으로 받아들일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증권산업의 제도적 환경은 개선되어야만 한다.

신경제5개년계획에 따라 금융제도가 급속하게 개편되고 있다.

어느 의미에서 일본보다 늦게 시작했으면서 진행속도는 빠른 금리자유화
외환자유화등 각종 자유화와 함께 금융산업의 업무영역개편은 투자금융회사
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은행과 증권산업의 상호진출은 은행이 자회사
형태로 이미 증권업에 진출해 있는 상태이다.

정부의 발표에 따른다면 규제완화는 계속될 것이고 또 지속되어야만 한다.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출수 있으려면 우선 세계적인 수준의
경쟁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하고 이는 곧 각종 규제를 중심으로한 제도를
개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율화(deregulation)의 의미는 규제완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국가간 계약의 기본정신은 내국인 대우와 상호주의인데 상대국과 수준을
같이하는 상호주의는 곧 그 나라수준의 규제완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내산업은 규제를 통해서 손발을 묶은채 외국기업만 우대할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국내산업에 새로운 제도에 익숙할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외국기업이 진출하기 이전에 규제완화를 통해서 경쟁력을 배양시켜야 한다.

보험산업의 개방이 비교적 가까운 사례에 속하는데 국내금융관행에 익숙
하지 않은 외국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증권산업은 국내적인 특성보다 세계적인 특성이 강조되어 왔고
선진국은 국경없는 거래, 24시간 거래를 주장하고 있으며 각종 제도와
관행을 표준화시켜 그야말로 "세계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곧 그들의 우월한 자본과 거래기법을 통한 경쟁력 우위를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있는 전쟁에서 싸워 이기겠다는 선진국의 노력은 외국의 생소한 시장
까지도 자국의 편의에 맞는 세계적인 표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만 독자적인 관행을 주장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본이 부족해서 조달해야 하는 입장으로 이자율이 보다
낮고 안전한 자본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제를 해서 잃는 것보다 유리하다면 우리는 개방을 하되 유리한
방향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종 금융규제는 우리 자신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벗어나
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으로 과감한 완화를 해야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투자자보호는 강화하되 경쟁을 저해하는 규제는 아예 제거
되어야할 것이다.

신상품 개발규제를 예로들어 보면 국내증권회사는 각종 법규나 규정에
의한 공적규제외에도 대부분의 업무분야에 있어서 행정지도 형태의 규제를
받고 있고 다른 금융기관과의 업무제휴도 어렵게 돼 있다.

미국에서는 금융개혁이전에 이미 다른 금융기관과의 업무제휴를 통하여
예금 신용카드 결제서비스등의 복합상품을 개발했고 일본에서도 예금과
결제서비스등의 제휴를 통해서 복합상품(입출금 온라인 제휴 카드결제
보험료 자동이체등)을 개발했다.

따라서 전업주의에서 겸업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이 비교적 순조로울수
있었다.

국내에서 금융규제를 완화하는 배경은 투자자나 예금주의 편의를 도모하는
측면과 아울러 금융기관간의 경쟁력을 조화있게 발전시키는데 있다.

따라서 금융산업중에서도 특정업종을 보호하려는 의도 역시 배제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금융산업의 업무영역 개편은 주목되어야 하고 어느 나라
에서나 논의의 초점이 되어 왔다.

금융산업은 은행 증권 보험의 세 기본산업을 토대로 한다.

이 세 산업중 보험산업은 특이하므로 일단 논외로 하고 은행과 증권산업의
상호진출을 전제로 어떠한 형태로 진출하는가를 논의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상호진출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국과는 다르지만 이해를
돕기위해 지난 80년대를 휩쓴 세계 금융 대개혁부터 살펴보자.

새로운 금융전쟁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세계 전역에 걸쳐 일어나고
있으며 세계 각국은 자국의 금융 자본시장을 혁신하여 이에 대응하고 있다.

금융시장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이 86년 대개혁(Big Bang)을 행한
이래 프랑스 캐나다등이 곧 뒤를 따랐고 80년대에 걸친 긴 논의끝에 미국
에서도 금년부터 금융제도 개혁법이 발효됐다.

30년대초에 제정됐던 은행법이 사문화되면서 은행과 증권산업이 분리되었고
전업주의(Specilized Banking System)가 막을 내린 것이다.

기법은 진취적이면서도 기본정신은 보수적인 일본조차 지난 92년6월
은행법 증권거래법등 16개의 금융제도 개혁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은행과
증권회사가 자회사를 통하여 상호 겸업을 하게 되었다.

이들이 유럽국가에 비해 개혁속도가 늦었던 이유는 은행과 증권산업의
상호진출에 따라 일어날수 있는 이해상충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유럽의 금융기관이 전통적으로 은행과 증권에 구별이 없는 겸업주의
(Universal Banking System)를 택해서 개혁이 비교적 쉬웠던데 반해 미국은
33년이래 전업주의를 택해 왔으며 이는 29년의 대공황에 따른 뼈아픈 경험의
산물이었다.

산업에 대한 금융독점을 우려한 미국정부는 은행법(Glass-Steagal Act)에서
각종 규제를 강화하고 증권산업과의 철저한 분리를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증권산업의 공격적인 업무개편과 신상품의 개발, 은행산업의 요구
등에 밀린 미국정부는 금융제도 개혁을 통해서 은행도 지주회사제도를 이용
하여 증권업무에 참여할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와 발맞춘 것은 아니지만 한국은 이미 은행업이
자회사로 증권회사에 진출하고 있는 반면에 증권회사는 은행업에 진출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은행이 증권업을 운영하는데 따라 생기는 이해상충의
문제는 해결돼야 할 것이다.

선진국들이 겸업주의를 실시하는데 있어서 우려하고 있는것은 정보와
인재교류에 의한 이해상충 문제로서 대리 문제와도 연결되는 것으로 기업측
의 이해를 우선하여 투자자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감독기관은 은행과 자회사간에 엄격한 차단벽(fire wall)을
설치하고 이를 감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이러한 차단벽에 대한 관심이 없는 형편이다.

이와 같이 업무영역의 개편은 은행과 증권같은 이종산업간의 겸업화가
추진되는 실정이지만 이상한 것은 업종내의 겸업화에 대해서는 논의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증권산업내에서도 증권회사를 비롯하여 증권투자신탁 증권금융 증권투자
자문등 많은 업종이 존재하고 있다.

국내 증권업계와 같이 규모나 전문성에서 서로 차별화를 이루고 있지 못한
실정을 보면 앞으로 자유화와 국제화에 따라 고객의 다양한 서비스 수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걱정이 된다.

겸업주의를 전통적으로 행하고 있는 유럽의 증권회사나 우월한 자본과
기술력을 가진 미.일 증권회사들이 선물과 국내기업의 해외 자본조달을
독점할 경우에 국내외에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증권산업 개편의 기본방향은 미국과 일본 회사들처럼 적극적으로
업무제휴를 통한 주변업무를 개발할수 있도록 업무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종합투자 증권회사(Investment Bank)를 설립할수 있게
하는 방안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증권과 관련된 인수합병(M&A) 기업양도 선물거래 외환 부동산업무와
같은 다양한 투자수단을 종합서비스 할수 있게 새로운 업무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금융에 있어서 정보산업과의 결합의 꽃을 피울수 있는 증권산업의 육성은
새로운 금융전쟁에서 듬직한 돌격대가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