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이 달라져야 할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새해에 이것만은
꼭 바뀌어야 한다고 지저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달라진다는 것은 또 완전한 변화를 의미한다기 보다는 지금보다 좀 더
낫기를 바라진 상대적인 것이다.

또 대학 스스로가 변해야 될 것이 있고 대학 밖의 것이 변해야 될 것이
있고 하여 어떤 것에 우선권을 두느냐 하는 문제도 쉽지가 않다고 본다.

이러한 모든 것을 감안하여 우리 대학이 꼭 달라져야 할 것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은 세가지 위기에 처해 있다.

그것의 첫째는 대학이 왜 존립해야 되는가에 관한 대학존립에 대한
문제제기인데,이것은 대학이념이 지니는 사회적 가치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질문으로 일관된다.

그 둘째는 대학의 학문정신에 대한 윤리성과 권위에 대한 위기인데
이것은 우리의 대학이 자율적 통치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식의
사회적 불신을 드러내 보이는 증표가 된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대학현실이 피부에 와 닿고 있는 큰 위기는 대학
재정의 취약성과 그로부터 연유된 대학교육의 위기이다.

대학의 재정,특히 사립 고등교육기관의 재정은 파산 바로 그것이라고
볼 만큼 불안정하기만 하다.

이러한 세가지의 사회적인 문제제기,말하자면 대학존립에 대한 문제
제기,대학 권위에 대한 문제제기,그리고 대학재정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는 한국대학이 고등교육의 국제경쟁력을 기르는데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서론에 지나지 않는다.

위에서 지적한 세가지 위기들은 오랫동안 한국 대학교육의 발전과 그
궤적을 같이 하고 있어 한국 대학교육의 발전과제가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척도와 같다.

해방당시 1개교의 대학으로부터 시작한 우리 고등교육기관은 94년 현재
1백57개교로 엄청나게 증가했다.

이런 고등교육기관의 양적팽창은 전통적으로 상아탑적인 대학이 갖고
있던 고고한 학문적 분위기와 귀족주의적인 지적 풍토를 과감히 벗어나게
만듦으로써 고등교육의 보편화와 고등교육의 대중화를 촉진시켜 주었다.

또한 1960년대부터 가열된 대학생들의 대정부시위와 학내 민주화에 대한
대학인들의 끊임없는 문제제기들은 대학이 그동안 누렸던 권위주의와
전문성이 갖는 사회적인 병폐와 윤리적 한계를 노출시킴으로써 대학자율의
민주화를 더욱 더 빠른 속도로 촉진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대학경영인들을 더욱 더 고뇌의 늪으로
빠지게 만든 대학 재정의 위기는 습관적으로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하는
우리 대학의 사회적 추악상,말하자면 우골탑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이를 극복할수 있는 대안으로 대학경영의 합리화와 대학경영의
전문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만들어 놓았다.

결국 대학은 그동안 대학 스스로 아무런 문제제기도 없이 대학의 삼대
기능으로서의 교수 연구 그리고 사회봉사의 기능이 갖는 대학의 역할과
국민이 실질적으로 요구하는 사회적인 기대감에는 근본적인 간극과
괴리가 있음을 그 스스로 내보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로부터 대학인 스스로 한국 대학교육 그 자체가 문화적으로나 교육적
으로 회생당하고 있다는 자조감들을 곱씹을 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대학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가에 대한 문제제기와
쓸데없는 지식이나 가르치는 대학은 사회적인 낭비가 아닌가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수용해야 하는 수모마저 겪어야 한다.

미국의 대법관 프랑크후터는 대학은 4가지의 본질적인 자율권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것은 첫째로는 누가 가르칠 것인가,둘째로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셋째로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넷째로는 누구를 입학시킬 것인가에
관한 학문적 토대와 근거를 대학 스스로가 결단하는 자유라고 하였다.

새해에 꼭 달라져야할것중의 첫째가 대학의 자율권이라고 한다면 바로
대학의 입시제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전체 고등학교 졸업생중 25%의 대학입학을 빛내주기 위해
75%가 들러리나 서게 만드는 대학입시제도가 존속함으로써 중등교육의
정상화가 파괴되고 있다.

또 대학의 자율권이 유명무실한 한 국제경쟁력있는 수준의 대학을
만들기는 난감할 뿐이다.

잘못된 대학입시로부터 연유된 교육의 부작용에 관한 문제점과 그로부터
연유된 악명이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하는한,대학에서 학문의 탁월성과
대학문화의 다양성을 이뤄내기는 어렵다.

세계적인 대학교육을 원한다면 중등교육마저 세계적인 수준으로 육성
되어야 한다는 미래지향적인 감각이 있어야 한다.

고등학교 졸업생중 똑똑한 학생을 뽑아 대학교육을 시키고 있기 때문에
적당히 대학교육과정을 마쳐도 일류대학이라는 학연 때문에 취직하는데
큰 염려가 없다는 식의 대학생활에 대한 안일한 태도가 마치 정상적인
대학문화로 인식되는 것은 대학으로서는 비극이다.

이런 대학문화가 존속되는한,대학의 우월성은 유지되기 어렵다.

서구의 대학생들이 한학기동안 10~12권의 책을 읽고 있으며 일본의 학생
역시 6권정도의 책을 읽고있는동안 우리의 대학생은 고작해야 3권정도,
그것도 겨우 수강과목에 관련된 전공서적이나 읽고도 수재로 졸업하게
되는 대학현실이 그대로 방치되는한,한국대학이 세계수준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재의 대학입시는 그 내용에 있어서는 창의력보다는 암기력과
문제풀이에 관한 찰나적 순발력을 요구하고 있다.

동시에 입시방법에 있어서는 아직도 중앙교육행정의 획일주의와 통제를
그 밑바탕에 깔고 있다.

선진국의 대학입시생이 이집트 문명과 21세기 포스트 모더니즘간의
상관성에 관한 사상적 질문에 대해 에세이를 쓰고 있는 그 순간,우리의
입시생들은 이집트문명의 발상지가 그 어디에 있는지에 관한 4선1택,혹은
5선2택등의 바른 답이나 골라내는데 시간을 쓰고 있다.

이러한 교육으로 세계수준의 대학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하나의 욕심
이라고 보아야 한다.

대학입시는 대학인의 손에 맡겨야 한다. 무시험 전형을 하든, 유시험
전형을 하든 그것은 대학에 맡겨야 한다.

대학 스스로 입시전담 부서를 두고 그것을 절차있게 잘 관리하는한,그
책임은 대학이 져야한다.

대학설립을 인가할 그 당시 이미 교육부는 그 대학의 자치능력을 인정한
것이기에 끝까지 그 책임을 대학에 물어야 하고 또 대학 스스로도 그에
해 책임을 져야 한다.

<< 계 속...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