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충영 < 국제경제학회장/중앙대 경제학교수 >

WTO체제의 출범과 함께 한국경제의 세계화는 앞으로 경제운용의 국가적
정향으로 설정되었다.

선진국 진입의 문지방에 서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볼때 우리경제의 세계화란
결국 선진국의 모범수준으로 우리의 제도와 관행을 고쳐 세계적 초일류
상품을 만들며 서비스를 제공할수 있는 능력을 비축하고 실현하는데 있다.

우리경제의 발전단계를 회고해 보면 시대별로 하나의 운용원리가 지배적
으로 흐르고 있었다.

60년대 노동집약산업의 발흥기에는 "자본동원의 경제"가 성장을 보장했고,
70년대 중화학공업화의 과정에는 "규모의 경제"가 추구되었으며, 80년대
후반부터 초기기술.지식집약산업들이 부상하면서 "범위의 경제"가 경제운용
의 중요한 원리로 등장했다.

그러나 앞으로 세계화의 이념으로 세계적 초일류 상품과 서비스생산을
지향하는 경제에서는 "네트워크의 경제(economies of network)"라는 운용
원리가 확대.심화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알드리치나 훼튼과 같은 조직사회학자들은 네트워크를 "일정한 형태로
연결되고 있는 조직전체"로 지칭하고 있다.

따라서 네트워크는 독립적 개체들 사이에 협동과 공생, 유연성의 존재를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개념에는 대기업메이커가 자신을 정점으로 필요한 부품을
피라미드형 계층조직을 통해 조달하는 수직적.계열화도 포함될수 있다.

또 대기업메이커와 부품공급자가 대등한 관계로 연결되어 프로젝트에
따라 이합집산을 되풀이 하는 유연한 조직관계도 생각할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동일기업의 국내본사와 해외지사와의 관계, 해외에 진출한
국내 라이벌기업들이 특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유기적으로 협동하는 일,
국내기업과 다국적 기업과의 관계등이 모두 네트워크의 개념속에 포함될수
있다.

WTO체제는 전방위 시장개방과 구속력이 있는 신국제무역규범아래 모든
나라가 편입되는 한지붕 경제권의 출현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국경의 장벽을 허무는 새로운 무역규범의
수립이 정보화시대라는 과학기술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금융자율화라고
하는 세계적 기류와 맞물려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정보화시대와 금융자율시대의 본격 도래와 WTO의 개막은 국내시장과 해외
시장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와함께 지리적 공간의 개념을 사라지게하고 시간적으로도 생산과 서비스
의 동시화현상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세계적 기업들이 초국적화로 변모되고 있는 현상이 이를 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60년대의 생활관련산업으로부터 70년대와 80년대
에는 기초소재산업으로 전환되었고, 90년대부터 전자 기계 자동차등 조립
가공형 산업으로 그 중점이 이행되고 있다.

조립가공형산업들은 산출액기준으로 80년에는 13%의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쳤으나 90년에는 30%로 늘어났고 수출비중도 같은기간동안 16%에서 31%로
증가했다.

94년에는 전자 자동차 기계류등이 우리나라 수출을 선도했다.

그동안 우리의 산업구조 고도화는 기본적으로 저임금의 이점을 바탕으로
선진국의 사양산업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또 우리경제가 고임금구조로 바뀌면서 이들 산업을 후발국에 다시 이전시켜
주는 안행형산업발전전략을 취하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우리의 주력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전자 자동차 기계산업들은 우리보다
앞서가는 선진국들에도 역시 주력산업이다.

따라서 세계화를 위한 초일류화 전략은 첫째 현재의 초기기술집약형에
머무르고 있는 조립가공산업들이 선진국형으로 고부가가치화될수 있도록
산업내 분업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둘째 미래첨단기술산업에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조립가공형산업들을 고가화하는 전략은 부품산업의 육성을 통한 완성품
메이커와의 유기적 네트워크구축에서 구해야 한다.

또 아직까지 미약한 지식.정보집약형 서비스업종과의 연계도 강화시켜야
한다.

우리나라의 조립가공산업을 뒷받침할 부품중소업체들은 층이 엷을 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낙후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 부품들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수지는 언제나
불안정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후발공업국으로 선진국을 따라잡을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는
"네트워크의 경제"를 최대로 활용한데서 찾을수 있다.

통산성과 재계의 네트워크를 통한 선진기술의 소화 개량, 엔고이후 생산
기지의 해외이전, 재벌기업간의 협동적 제휴등이 좋은 예에 속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기업과 부품업체들사이의 계열화라는 네트워크가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경쟁협력(competiration)"을 전산업에 파급시켰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관계는 갈등형으로 점철되어
왔다.

납품업체에 원가인상요인의 전가, 납품대금의 결제지연등의 풍토속에서
유기적 네트워크는 전혀 꽃피우지 못했다.

앞으로 규제완화가 지속될수록 기술 정보 자본 인재등에서 절대우위를
지니고 있는 대기업들은 전방위 이점을 만끽할수 있을 것이다.

반면 중소기업의 위상은 앞으로 점점 왜소화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조립가공산업과 중소부품산업과의 선순환
네트워크 형성없이는 세계적 일류화로 성숙될수는 없다.

조립가공산업의 세계적 일류화를 위해서도, 대기업들의 자체효율을
위해서도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중소부품업체 육성에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대기업들은 이제 중소기업과의 "네트워크경제"의 이점을 극대화해야 한다.

대기업들은 중소기업과 기술및 노하우의 공유, 정보의 공유, 금융의 공유
까지 감행하면서 유기적 네트워크를 추진하여야 된다.

그리고 그러한 네트워크의 정신은 라이벌 대기업들 사이의 전략적 제휴로도
확대되어야 한다.

동업을 하지 못한다는 우리 전래의 심성에 발상의 전환이 일어날때 우리
경제의 세계화는 더욱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