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명사회에서 여가란 오랜 힘든 노력끝에 얻어지는 대단한 사치다.

레저스포츠로서의 사냥은 인류사를 되돌아 볼때 사치중의 사치다.

그런데 그런 사치를 남녀노소가 모두 골고루 누리고 있는 사회가 지금도
있다.

탄자니아의 하자족,중앙아프리카의 피그미족,남아프리카대륙의 오지에 사는
인디언, 누니아무트 에스키모족들이다.

물론 그 부족들의 사냥은 생계의 수단이지만 역설적으로 현대인들의 눈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로 비쳐질수도 있다.

사냥은 일찍이 왕과 귀족계층에서 널리 성행했고 오늘날에도 상층사회에서
선호되고 있는 레저스포츠이기때문이다.

왕과 귀족계층의 사냥역사는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 간다.

고대그리스에서는 토끼와 멧돼지 사냥을,고대중국과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매 사냥을 즐겼고 그대이집트에서는 사자까지 길들여 사냥에 이용했다.

페르시아제국의 건설자인 키루스2세는 4개도시의 세금을 사냥하는데 다
써버릴 정도로 사냥광이었다.

로마제국이나 중세의 왕후장상들 또한 사냥에 몰두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사냥이 레저스포츠로서 행위된 역사기록은 삼국시대때부터
시작된다.

고구려때는 왕이 관원들을 거느리고 사냥을 했는가하면 마굿간에는 사냥용
말을 기르고 꿩사냥용 매를 기르는 응방을 두었다.

통일신라때는 화랑들이 무예를 익히고 심신을 단련하는 수단으로 산야에서
사냥을 했다.

고려때는 왕의 사냥이 연례행사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조선조때는 초기에 왕이 사냥을 했다는 기록이 있을뿐 선비들은
사냥을 즐기지 않았다.

일반대중이 사냥을 레저스포츠로 증기게 된것은 프랑스혁명 이후의 일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제국의 봉건왕조 몰락에 따라 왕과 귀족의 전유물
이었던 것이다.

그뒤 사냥은 총기의 개량과 우수한 사냥개의 출현으로 레저스포츠로서의
자리를 굳히면서 일반대중에 점차 확산되었다.

그에 따른 무질서한 동물남획이 지상의 조류와 포유류를 멸종위기로 몰고
가는 주요인의 하나로 등장했고 급기야는 자연보호단체들의 지탄대상이
되었다.

이제는 사냥이 환영받는 레저스포츠일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클린턴대통령이 정초에 고향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사냥한 오리들을 들고
있는 모습이 세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분명히 옛날의 왕후장상 모습은 아닐테니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