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나라-.

평균 한국인들의 생각속에 각인돼 있는 ''일본''의 이미지다.

지리적으로 따지면야 더없는 지근지간이지만, 막상 일본을 보는 한국인들의
속내는 그렇지 못함을 은유하고 있다.

올해로 광복 50년을 맞지만 아직도 한국의 매스컴에는 ''정신대 피해보상''
''국립중앙박물관 철거''같은 반세기전 상흔을 아로새기게 하는 기사들이
단골 메뉴로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사정은 일본쪽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추한 한국인" "일본이 한국을 싫어하는 이유"같은 원색적 제목의 책들이
일본내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올해로 양국은 또 국교정상화 30년째를 맞는다.

외교관계가 "정상화"된 지 한 세대가 넘어가고 있지만 양국간 실질적
협력관계까지도 정상화됐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많다.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만 가는 무역역조가 상징하는 경제적 지배와 종속의
관계때문만도 아니다.

세계화를 주창하면서도 일본에 대해서만은 "수입선 다변화"제도로 일부
품목의 수입빗장을 걸어잠그고 있고, 미국과 유럽의 영화 비디오 연극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받아들이면서도 "왜색문화"만은 철저하게 배척하고
있는게 오늘의 한국이다.

경제분야를 넘어선 문화종속까지를 우려하는 때문일까.

일본쪽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재일한국인들에 대해 계속되고 있는 지문날인제도 취업제한등 차별적 법제
는 바로잡힐 줄 모른다.

두나라가 서로에 대한 무형의 견제와 경계를 아직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하고 있다.

식민지배.피지배의 굴절 관계가 종식된 지 반세기가 지나 두나라가 국교를
정상화한지 30년째가 되도록 양국민간의 "정서"는 아직도 완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한 편으로 양국간의 공식적인 관계는 더없이 긴밀해진 상태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동북아문제에 관한 한 미국을 축으로 한.일을 점으로
잇는 "3각 동맹구도"의 한 켠 씩을 차지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동북아지역의 정치.외교.군사문제에서 보조를 같이
하고 있다.

그만큼 지역사안에서는 서로의 밀접한 협력없이는 어느 쪽도 홀로 서기
어려운 운명적.지정학적 관계에 있음을 말해 준다.

경제적으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일간 수출이 공식적인 통계로 잡히기 시작한 지난 61년 양국간 교역규모
는 9천만달러선이었으나 94년에는 3백90억달러를 기록했다.

30년 남짓새 무려 4백30배가 늘어났다.

일본은 한국에 있어 두번째의 수출시장이자 최대 수입대상국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본입장에서도 한국은 무시할 수 없는 경제파트너다.

상품만 파는 게 아니라 효용이 떨어진 기술까지 유효적절하게 "소화"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시장이 한국이다.

국제전반의 이슈를 놓고도 한일간에 보조를 맞추는 일이 최근 부쩍
잦아지고 있다.

가깝게는 지난해 11월 자카르타에서 열린 APEC(아.태경제협력체)지도자및
각료회의에서 역내무역자유화등 현안을 놓고 미국을 견제하면서 아시아지역
국가들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두나라가 앞장섰다.

8년여의 대장정끝에 작년4월 모로코에서 막을 내린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에서도 두나라는 쌀시장 개방등을 놓고 발걸음을 맞췄다.

그 하이라이트로는 올해부터 새로 출범케 되는 WTO(세계무역기구) 초대
사무총장직 경선과 관련, 일본이 한국의 김철수후보 공식지지를 선언하고
나선 것을 들 수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등 미국 언론들이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놀랍게도(To the
surprise) 일본이 미국이 아닌 한국의 손을 들어줬다"고 논평할 정도로
국제사회에서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한일 두나라가 이런 저런 정서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차곡이 쌓아온
협력과 유대관계에 비춰보면 일본의 "선택"은 조금도 놀라울게 없다.

첫째로 갈수록 교역구조가 고도화되고 있음을 들 수 있다.

60년대초 한국의 대일수출은 농수산물 철광석 무연탄등 1차산품이 전체의
60%를 차지했고, 대일수입도 화학비료 자동차 기계류가 60%를 웃돌았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선 전자등 기계.기기와 철강금속제품이 대일수출의
주종품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때 간판 대일수출품목이었던 섬유제품조차도 전자제품에 밀려나고 있을
정도다.

특히 반도체와 같은 고도 기술제품이 대일수출의 주종품목 중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TV VTR 냉장고등 가전제품과 컴퓨터 관련제품, 철강
금속제품등의 대일수출도 크게 늘고 있다.

특정 산업내에서 기술발전단계에 따라 두 나라가 서로 수출도 하고 수입도
하는 "산업내 무역", 바꿔 말하면 수평무역이 활발해지고 있다.

한일관계는 또 교역이외에 산업협력 분야에서도 차원을 달리해 발전해
왔다.

특히 최근 반도체 자동차 가전등의 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양국기업간
"전략적 제휴"는 새로운 한일협력 시대의 방향을 보여준다.

그동안 대일 기술도입에 매달리며 싼 노임의 단순 하청생산기지로 만족했던
한국이 일본과의 공동기술개발 공동이익추구라는 수평적 위치의 공존협력
체제를 구축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양국간 신산업협력시대의 개막은 일본업계가 엔화강세에 따른 가격
경쟁력 약화를 메우기위해 전략적으로 한국기업과 손을 잡고 있는데서
비롯된 측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한국기업들이 각 분야에서 일본기업과 상호보완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과 실력을 축적한 데서 더 큰 동인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삼성전자-NEC.미쓰비시" "금성일렉트론-히타치" "현대전자-후지쓰"등
반도체업계에서 일기 시작한 전략적 제휴의 새 바람은 자동차 가전 조선
등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산업협력 방식도 <>공동 기술개발 <>상호 부품조달 <>제3국시장 공동진출
등으로 다양하다.

양국간 신산업협력시대의 도래는 이같은 민간기업 차원에서의 전략적
제휴 뿐 아니라 정부차원의 협력이 강화되고 있는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작년 3월 도쿄 한일정상회담에서 "소재및 부품산업
공동 육성을 위한 7개 협력프로그램"에 합의하는 등 양국기업의 전략적
제휴를 적극 돕는다는 데 두나라 정부가 의기투합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양국 정부간 협상테이블에서 한국이 일본측에 "대한 기술이전이
활성화되도록 성의를 보이라"고 요구하면 일본은 "민간기업 차원의 문제로
정부가 거론할 성질이 아니다"고 맞받아쳐 평행선을 그어온게 이전까지의
"협력 현주소"였고 보면 의미있는 변화로 새길만 하다.

물론 한일두나라간 경제협력의 앞날이 이처럼 밝은 것 만은 아니다.

작년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가 사상처음 1백억달러를 넘어선게 상징하듯
양국간의 계량적 경제관계는 "불균형"의 도를 더해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한국은 수출을 늘리면 늘릴수록 일본으로부터
기계및 부품수입을 계속 확대해야 하는 대일의존적 산업구조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 시급한 게 자생적인 기술개발이지만 한국은 그마저도 상당부분
일본에 "기술이전"을 받아 해결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어쨌든 한일경제관계가 미래지향적 방향으로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크게 보면 90년대들어 심화되고 있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유럽연합
(EU)등 지역블록체 결성이 한일간의 결속을 재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APEC등에서 두 나라간 협력이 확대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면
된다.

작게는 일본의 엔화강세와 한국의 내수시장확대등이 맞물려 양국간 협력을
부추기고 있다.

공생과 공존을 지향하는 한일경제협력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가간 산업경쟁은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갈라지는 이분법적 양태가
아니라 서로가 부분적으로 얽히고 설키는 "다원적 상부상조형"으로 발전되고
있다.

미국 크라이슬러사가 일본 자동차업계를 타도한다고 내놓은 소형 승용차
"네온"의 몸체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금형과 대형 프레스는 일본제품이다.

일본의 액정 패널이 없으면 미국의 점보제트기생산은 불가능해 진다.

미국의 MPU(마이크로 프로세서)가 없으면 일본의 전자산업도 맥을 못추게
된다.

올부터 막을 여는 WTO시대엔 이같은 추세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한일 두 나라가 지향해야 할 앞길은 분명하다.

"동반자"로 확실한 입지를 다져야 한다.

서로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을 바꿔 서로가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관계를 재구축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탈이데올로기 무한경쟁시대 양국의 진정한 공존공영도 가능할
것이다.

< 이학영.차병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