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땀에 젖은 한해였다. 더위먹어가며 공장을 증설하긴 했으나 운전자금줄이
막혀 정신없이 뛰어야 했다.

겨우 찾아낸 납품처에서 장기어음을 받는 바람에하늘이 노랬다.

수출시장을 뚫느라 얼굴이 새카맣게 타서 와보니 거래기업이 부도를
당해 너무나 허탈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모든 중소기업인들이 이처럼 올해는 경영애로를 심하게 겪었다.

"도대체 올 한해를 어떻게 넘겼는지 정말 아득하기만하다"고 한
중소기업자는 이제야 한숨을 돌린다.

올해 국내에서 1만2백50개기업이 부도를 내며 쓰러지고 말았다.

중소기업고유업종이 차츰 해제되면서 영세업체들이 갈수록 시장을
잃어갔다.

그러나 해외인력의 도입으로 인력난이 다소나마 해소됐고 공장신증설
규제완화로 설비투자가 확대됐다.

공기업민영화에 중소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으며 자동차
부품등 일부업종은 보기드물게 호황을 맞았다.

극심한 양극화 현상.이것이 올해 중소기업이 뼈절이게 겪었던 특이한
현상이다.

부도업체수가 엄청났음에도 주식회사창업이 사상최대규모인 1만5천8백개에
이르렀음이 이를 여실히 반영한다.

<>.중소기업의 고유시장에 둘러처져 있던 성곽에 구멍이 뚫려 버렸다.

지난9월1일 2백37개 중소기업고유업종중 58개업종이 풀리면서 그동안
중소기업시장을 노리던 대기업및 외국기업들이 물밀듯 몰려들어 왔다.

특히 배합사료와 부동액 브레이크액분야가 치명타를 입었다.

지금까지 2조5천억원의 배합사료시장을 60여개 중소기업들이 분점해
왔으나 2개의 다국적기업과 2개의 국내대기업이 사료생산을 추진하고
있어 중소업계는 완전히 비상사태이다.

또 형광등안정기 김치 장류 싱크대 페인트등 분야에서도 국내 대기업
들이 선점경쟁을 벌이듯 중소기업시장을 밀쳐 들어오고 있다.

더욱이 새해에 45개고유업종이 더 해제되는데다 97년에 47개가 더
해제될 것을 대비해야 하는 중소기업들은 자구책마련에 속을 앓고
있는 중이다.

중소기업계열화품목도 계속 줄어들고 단체수의계약에 의한 관납도
감소추세여서 중소기업의 판로확보는 더욱 어두워지고 있다.

다만 중소기업공동창고의 건설,중소기업전시판매장설립,중소기업
집배송센터건립등을 통한 유통비용절감에 약간의 기대를 걸고 있을
따름이다.

<>.지난 20여년간 올해처럼 중소기업지원정책이 심하게 바뀐 적은
없었다는 것이 업계의 한결같은 견해이다.

먼저 중소기업관계법이 통폐합됐다. 8개법이 6개법으로 줄었다.

특히 중진공이 업체에 자금을 지원하던 근거법인 중소기업구조조정법이
폐지됐다.

구조조정기금은 지방화시대에 대비,지자체로 이관되었다.

이에 따라 중진공에서 자금을빌리던 기업들이 제때 설비자금을 마련치
못해 허둥댔다.

희망적이 변화도 따랐다.

도시형업종이 3백34개로 늘어나고 공장기준면적이최고 50%까지 허용돼
중소기업들의 증설붐을 촉진했다.

중소기업자동화자금 5천억원이 별도로 책정된 것도 자금난에 허덕이던
기업인들에게 단비역할을 충분히 했다.

<>.중소기업의 양극화현상은 업종별 정상조업률에서도 분명히 드러났다.

중소기협중앙회가 실시한 최근조업률조사에 따르면 자동차부품업종과
리사이클링재료가공업체는 1백%의 조업률을 나타냈다.

반면 의복모피및 비금속광물업종은 60%대에 머물렀다.

업체별로도 호황업종에 속했던 자동차부품분야에서 삼흥열처리 효정물산
삼흥사등의 경우 2백%이상의 매출신장을 나타냈다.

진광 대원기계공업등 중견기업들까지도 신기술개발등을 통해 1백50%
이상의 신장세를 보였다.

반면 동창제지 동방개발 남한제지 KYC 호승 광덕물산 광림전자등
상장기업들조차 부도에 직면하고 말았다.

이름 그대로 영욕이 엇갈리는 한해를 보내며 중소기업계는 기업마인드를
바꿀 것을 다짐한다.

이제 기술로 승부걸것을 마음먹는다.

국내시장에서 서로 물고 뜯으며 진땀흘리기보다 세계화에 걸맞게 밖을
내다보며 공정한 경쟁을 벌이는 새해를 맞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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