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조직만이 살아남는다.

글로벌시대의 무한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기업 모두가 과감
하게 변신해야 한다고 한다.

리엔지니어링 리스트럭처링 학습조직론등 갖가지 경영혁신이론이 대두되고
주목받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최근 각광받는 새로운 이론의 바탕은 그러나 살펴보면 다름아닌 인간존중과
지속적인 교육이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 인간의 가치와 능력을 믿는 교육에
대한 투자야말로 기업을 비롯한 모든 조직개혁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R&D부문의 권위자이자 평소 경영학과 경제학은 물론 모든 학문의 근본은
인간사랑이요 인성교육이라고 주장해온 서울대경영대 김정년교수(62)를
선경경영관 5층 연구실에서 만났다.

-최근 리엔지니어링과 리스트럭처링등 많은 경영혁신이론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개방화시대를 맞아 기업의 위기의식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겠지요.

<>김교수=어떻게 해야 우리나라나 기업이 현재상황을 극복하고 세계화나
개방화에 대응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 해답은 10년전부터 나와 있다고
봅니다.

리엔지니어링이나 리스트럭처링등은 하나의 용어에 불과하지요. 경영구조나
방법상의 변화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할 수 없어요.

문제는 보다 근원적인 것에서 출발해야 해요.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과연
우리 경제의 규모가 그렇게 큰 것인가를 먼저 따져봐야지요.

GNP 3천4백억달러로 경제규모만으로는 세계15위라고들 하는데 과연 그런
수치가 얼마나 의미가 있느냐 말이에요.

상품의 양만 계산할 것이 아니라 질, 즉 내용을 구성하는 테크놀로지의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냉정하게 살펴야지요.

-그래서 인성교육을 강조하시는 건가요.

<>김교수=그렇습니다. 답은 사람이에요. 사람을 어떻게 제대로 만들고
적응시키는가에 달려있는 것이지요.

미국은 선진국이 되는데 1백50년, 일본은 1백15년 걸렸어요. 우리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요.

-사람을 올바로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김교수=교육을 바로잡아야지요. 예비고사 학력고사 수능고사등 개인의
선택기회를 제한할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낭비를 초래한 그런
제도가 왜 생겼는지 충분히 검토하고 시정해야 한다고 봐요.

자유경쟁을 원칙으로 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그런 제도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국내대학에 가는 것만을 목표로 한 그런 제도를 그냥 둔채 국제경쟁력
강화나 사회개혁을 부르짖는 것은 근본부터 잘못됐다고 봅니다.

사람이란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뒤늦게 자신의 능력이나 적성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인성을 키울 시기에 학과성적의 노예를 만들고 정해진 테두리안에 들지
못했다고 인생의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리가 무너진 책임은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이 생기게끔 만든 국민 모두에게 있는 것이지요.

지금부터라도 고쳐야지요. 빨리 되지는 않겠지요. 최소한 30년이상 걸릴
거에요.

-그런 제도가 왜 생겼다고 보십니까.

<>김교수=서로 다른 여러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혔다고 봅니다만 가장 큰
것은 획일화의 필요성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국가가 관리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전체주의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획일화하고 싶어하니까요.

하지만 민주주의사회에서는 가능한한 사람의 행동과 선택 모두를 자율에
맡겨야 합니다.

새뮤엘슨은 "자본주의란 보이지 않는 곳에 힘이 있는 제도며 따라서 이
체제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있으면 내버려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뉴욕은 정전만 되면 갖가지 사고가 발생합니다. 그래도 몇백년동안
도시의 기능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민주주의란 그런 것입니다. 사람은 풀어 놓아야 합니다. 묶는다고 순순히
갇혀 있지 않는 것이 사람이니까요.

-교육제도도 제도지만 60년대 이후의 경제성장일변도정책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기적이고 물질만능적인 사고에 젖게 만들었다고들 하는데요.

<>김교수=경제성장위주정책에 인성파괴의 원인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
합니다.

돈과 아파트 땅만 중시하다가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은
것이지요.

우리나라 중산층이상의 소비를 미국이나 일본의 같은계층사람들의 수준과
비교하면 정말 놀랍지요.

외국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들은 진짜 검소해요. 낭비하면서
살수 없도록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설사 형편이 되도 그러지 않습니다.

근래 우리나라 중산층이상의 소비행태를 보면 놀라워요. 정신이 물질적
소유에 못미치는 것이지요.

이 역시 균형이 갖춰지려면 시간이 걸릴 거에요.

-그렇다면 인성을 바로잡기 위해 교육제도 개선외에 어떤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김교수=인성백서 혹은 도덕백서를 만들어야지요. 경제백서를 발간하듯이
말입니다.

경제가 인성을 그렇게 피폐하게 만들었다면 경제백서보다 인성백서를 내는
것이 더 중요해요.

도대체 우리의 시행착오가 어느 정도이고 어떤 상태인가부터 짚어보고
방향을 잡아야지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새로운 교육과 훈련의 필요성이 대두
되고 있는 것 아닌가요.

<>김교수=최근 경제원론에도 기업의 조직론이 도입됐어요. 종래 노동력의
수급만을 다루던 데서 바뀐 것이지요.

미국사람들이 일본인에 대해 갖는 컴플렉스중 하나가 사람을 어떻게
그토록 잘 훈련시키는가라는 점이에요.

따라서 요즘 서구의 경제학이나 경영학은 모든 이해관계를 사람중심으로
파악하자는데 촛점이 맞춰지고 있지요.

또 요즘 정보통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데 정보통신을 컨트롤하는 것은
사람이잖아요.

전화는 도구에 불과하지요. 기업 학교 관료조직 할 것없이 인간네트워크로
이뤄지는 만큼 사람을 어떻게 교육하고 활용하느냐에 모든 문제가 달려
있어요.

미국의 최근 베스트셀러가 한결같이 인재활용법을 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교육문제와 함께 일찍부터 테크놀로지쪽에 관심이 많으셨지요.

<>김교수=석사논문이 "기술진보와 자본축적에 관해"였어요. 그후 계량적
방법론 즉 통계학에 관심을 두었다가 90-91년 일본게이요대객원교수로
있으면서 다시 기술관리론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어요.

기술이 진보 향상되면 제도나 환경도 그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 현실이에요.

또 기술이 일정상태에서 뒤처지려 하면 제도나 환경을 보완, 바로잡아야
하는데 그 또한 잘안되지요.

말로는 잘못된 법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한다고들 하면서도 실제로는 얽힌
문제가 많아 손을 못대요.

대화하고 회의하고 그러다보면 시간이 늦어지고, 결국 시기를 놓치는 수가
많지요.

기술관리 양상은 미국과 유럽 일본이 모두 달라요. 우리는 또 다르구요.
EC의 경우 국가 지역간 이해관계가 얽혀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요.

우리는 아직까지 EC문제를 소홀히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EC의
경우를 잘 참고하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는 기업의 연구개발(R&D)쪽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온 것으로
아는데요.

<>김교수=최근 5년간 각국의 자료를 수집하고 사례를 분석하는등 집중적
으로 연구했지요.

문제는 R&D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에요. 법적인 제도와 기업윤리등이
밑받침되지 않으면 R&D는 방향을 잃게 되지요.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돼야 R&D의 방향이 결정되고 방향이 결정돼야 성과를
거둘 수 있어요.

이제는 연구원들에게 월급만 주고 마음대로 연구해라해서는 안돼요. 방향을
제시하고 그방향대로 연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수박겉핥기밖에 못해요.

R&D라는 말만 외치다가 끝나게 되지요. 요사이 TV에서 유럽이나 싱가폴의
R&D 사례를 보여주는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상태까지 올 수 있었던
과정을 알려주는 것이에요.

신문이나 TV등 언론매체들이 외국의 예를 소개할 때는 언제나 현재의
상황과 함께 과정을 상세히 곁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서울대교수중 관계로 진출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김교수=학자는 전문적인 것을 다루는 사람인 만큼 경직성을 갖는 부분이
있어요.

따라서 현실적인 정책과정에서 얼마나 받아들여지나에 따라 뜻을 펼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지요.

어떤 경우든 임명권자가 충분한 시간과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의 능력은 비슷한데 자꾸 바꾼다고 무슨일이 되지는 않지요.

기존의 정치세력과 융화되는데도 시간이 필요하구요. 조직개편문제도
조직과 조직사이에 갈등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이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기구자체를 바꾸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기구가 나빠 무슨일이 안된 일은 동서고금을 통해 별로 없어요.

-요즘 젊은사람들을 신세대니 X세대니 해서 기성세대와 상당히 다르게
평가하는데요. 실제로 과거의 학생들과 많이 다른가요.

<>김교수=예전학생과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버릇 없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오히려 자율적인 면이 많이 엿보이지요. 자유경쟁에 익숙해 있다고나
할까요.

젊은세대와의 문제는 어차피 기성세대가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해결해 가야지요.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김교수=2년전 경기도안성으로 이사했어요. 5시면 일어나 30분간 걷고
6시에 학교로 출발해요.

7시께 학교에 도착해 오후5시께까지 지내지요. 욕심 안부리고 무리하지
않는 것외에 특별한 관리랄 것은 없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김교수=R&D에 대해 연구한 것을 3-4권의 단행본으로 묶어 펴내려 해요.
R&D가 중요하다고들 말은 많이 하지만 막상 정리된 자료가 없어요.

김교수는 경남마산 태생으로 서울대상대경제학과를 거쳐 일본명치대대학원
을 졸업했으며 한양대와 건국대 교수를 거쳐 68년부터 서울대에 재직해
왔다.

서울대 경영대학장과 경영연구소장, 한국경영학회장을 지냈다. 원칙을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한 김교수는 "집에서 나라걱정만 하지 말고 집안걱정도
좀 해보란다"며 활짝 웃었다.

[ 대담 = 박성희 < 문화부장 >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