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인자락산"이란 말이 있듯이 산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고독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세상사에 부대끼기 보다는 한발치 물러서서 번잡한 세상사를 관조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필자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산에 오르고 산의 정기를 맛보는 것이 즐겁다보니 혼자 무작정 산에
오르는 것도 좋아하고 같이 간다고 해도 둘이면 족하다.

그런 필자에게 이정배형은 오랜 동호동락의 동반자이다.

그는 전북 신태읍 출신의 죽마고우로 중앙대 정치학과 동창생이기도
하다.

필자가 이형에 비해 적극적이고 이형이 필자에 비해 소극적이어서
오히려 이점이 둘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온 것 같다.

우리 둘은 같이 산에 오르기를 정말 즐기는 친구들이다.

최근 그와 함께 한라산 백록담에 올랐다.

백두산은 다녀왔지만 한라산은 한번도 가보지 못한 우리였다.

한라산 송파악은 듣던 것과는 달리 등산로가 온통 자갈밭이었다.

그간 올랐던 백두산 금오산 백운산 보현봉은 험준하긴 해도 등산로가
흙이어서 등반이 그리 힘들진 않았었다.

고생끝에 백록담을 정복,천지와 유사한 모습의 화산분출구를 보고 잠시
한반도는 화산에서 시작,화산으로 끝난 정열의 나라가 아닌가하는 상념에
빠져들기도 했다.

이윽고 안개가 걷히고 날씨가 청명해지면서 고산준령이 신비한 자태를
드러내자 우리는 인간의 왜소함에 숙연한 느낌을 감출수 없었다.

이처럼 우리 둘이 즐기는 등반은 시끌벅쩍하지도 않고 그야말로
정중동이다.

정겨운 친구와 이심전심의 교류를 갖고 인생을 반추해보는 사색의
시간이다.

우리 둘의 꿈은 다음 등반코스로 금강산,알프스를 찾아가는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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