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그룹은 어떻게 북한에 투자조사단을 파견할수 있었는가.

쌍용그룹이 정부의 방북허가이후 처음으로 13일 북경을 거쳐 평양에
대북투자조사단을 파견한 사실이 알려지자 쌍용의 대북접촉 창구와
인맥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쌍용그룹 투자조사단의 방북은 그동안 국내 기업들이 북경의 대북
접촉창구로 활용했던 북한의 고려산업민족발전협의회(약칭 고민발)나
대외경제협력촉진위원회가 아닌 북한고위당국자에 의해 직접 이뤄졌다는
게 정설이다.

쌍용그룹 방북조사단에 끼인 81세의 손원태씨와 북한고위층과의 사적인
관계를 보면 자연스럽게 쌍용의 방북과정을 이해할수 있게 된다.

손씨는 김일성과 돈독한 친분관계를 가져왔던 손정도목사의 아들로
초대해군참모총장을 지낸 손원일씨(사망)의 친동생이다.

쌍용그룹의 방북조사단 12명중 눈여겨볼 사람은 손씨외에 손명원
(주)쌍용사장(손씨의 조카). 이들 손씨 일가가 쌍용그룹의 방북성사의
"열쇠"역할을 한 것이다.

김일성은 생전에 직접 집필했다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제2권에서
손정도목사편을 별도로 다룰 정도로 손씨 일가와의 친분을 각별히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이 회고록에서 김일성은 "만주 길림성에서 투옥됐다가 감옥을 나와
맨 처음 찾아간 곳은 손정도목사의 집이었다.

일곱달 동안 꾸준히 옥바라지를 해온 손정도일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라고 하고 떠나는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면서 "아버지처럼 따랐던"
손씨 일가와의 친교를 회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손원태씨는 손정도목사의 막내아들로 지난 91년5월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시에서 병리학의사로 일하던중 북한해외동포영접부의 초청으로
부인 이유신씨와 함께 방북,김일성으로부터 뜨거운 환대를 받았었다.

그 이후 재미교포의 신분으로 자주 북한을 드나들던 손씨는 김정일과도
자연스럽게 친교를 맺게 되었고 김정일도 아버지와 친형제처럼 지냈던
손원태씨를 깍듯한 예우로 대했던것으로 전해졌다.

이와관련,최근 북한을 방문한 중국동포 L씨(중국의 북한대리점책임자)는
서울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난 9월 (주)쌍용의 손명원사장을 북한에서
봤다"고 말한적이 있으나 본인이나 쌍용그룹측은 이를 극구부인했었다.

이에대해 쌍용그룹측은 "이번 방북에 손씨 일가와 북한고위층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작용한것은 사실이나 이보다는 남북경협의 물꼬를
트려는 그룹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것"이라고 말했다.

< 김영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