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김영규특파원] 삼성그룹의 복합 전자단지를 유치하기 위해 영국
측에서 상공장관,스페인측에서는 사마란치 국제올림픽(IOC)위원장이 나서
신경전을 벌인것은 이제 유럽 산업계의 유명한 일화가 됐다.

실업난 해소가 정권의 향배를 좌우하는 지금 대통령이 직접 투자유치에
나서는곳이 유럽이다.

일자리만 만들어주면 기업의 국적은 상관치 않겠다는게 이곳 정부들의
기본 방침이다.

따라서 외국투자를 끌어들이기위해 온갖 "당근"을 동원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현지에 생산공장을 세울때는 상당한 환대를 받지만 일단 발을
디딘후에는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기업차원이 아니라 국가차원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또 엄청난 지원책의 뒷면에는 그의 상응하는 의무도 상존한다.

부품 현지화 비율을 지켜야하고 당초 사업계획대로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경영이 어렵다는 등의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여차하면 당근이 채찍으로
변하는 곳이 유럽이다. 분명 한국보다는 기업환경이 훨씬 나은건 사실이나
공짜는 없다.

지난 92년 삼성전자가 컬러TV 라인을 포르투갈에서 영국으로 옮길때
그 대가로 D램 반도체 조립공장을 현지에 세우기로 약속했었다.

TV라인철수로 발생하는 실업자 수만큼을 반도체공장에서 흡수하겠다고
관련 당국을 달래야했다.

삼성전자 영국공장도 컬러TV라인을 인수했기 때문에 그때까지 가동중인
VTR라인을 스페인 바로셀로나로 보낼수 있었다.

삼성그룹 자체의 생산기지 합리화 계획도 일단 해외에 나오면 상당한
제약을 받게되는 셈이다.

금성사도 독일 보룸스에 있는 VTR라인의 이전을 둘러싸고 2년간 고심을
거듭했다.

유럽 최초의 현지기업인 보룸스공장을 영국에 건설중인 전자단지로
옮기는 것을 수차례 검토했으나 최근 일단 유보키로 결정을 내렸다.

인건비가 영국의 2배에 이르는등 일본기업조차 이곳에서 철수할 정도로
여건이 나쁜점을 감안할때 이전이 오히려 합리적일수도 있었다.

그러나 본사인력외 노력으로 지난해부터 생산성이 크게 향상,영업수지가
흑자로 돌아선데다 공장폐쇄에 따른 부담등을 감안,잔류로 급선회한
것이다.

이처럼 일단 현지에 생산기지를 세우면 계약기간 동안은 상당한 부담이
뒤따른다.

보조금을 많이 받을수록 반대급부는 그만큼 커진다.

대우전자의 프랑스 컬러TV공장은 35%란 그지역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받은 대가로 3백명의 현지인을 고용,이를 98년까지
유지해야한다.

삼성전관 베를린공장도 지난해까지는 7백50명,그리고 98년에는 1천명을
고용해야한다.

또 금세기말까지 사업을 포기하거나 공장을 이전할 경우 초기에 지급받은
보조금의 환불은 물론 해고에 따른 비용도 물어야한다.

부품 현지화비율도 큰 부담이다.

현지에서 생산해도 이규정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역외 생산으로
취급된다.

수입관세를 물어야 현지 판매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보조금을 받는 조건으로 대우전자 전자레인지공장 처럼 부품현지화 비율
을 일반 규정인 40%정도보다 훨씬 높은 50%에 맞춰야 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그만한 부다을 감수해야하는 셈이다.

유럽정부는 보조금 지금에는 인색하지 않으나 그대신 단순히 조립 생산만
하는 업체의 진입은 금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방지하기위해 세관당국자가 수시로 외국공장을 방문한다고 유재활
대우전자 전자레인지 법인장은 전한다.

결국 보조금이란 당근에는 엄청난 반대급부가 뒤따르며 초기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는 기업은 파산할수 밖에 없는 곳이 유럽이다.

지난 7월 사실상 파업상태에 들어간 해태전자 프랑스공장이 그 예이다.

지난 89년부터 로렌지역에서 카오디오를 조립생산해온 이공장은
핵심부품인 PCB판을 국내에서 들여와 단순 조립하다 수입관세를
물게됐다.

프랑스에서 생산 활동을 하지만 한국기업 취급을 받은 셈이다.

이회사는 매년 상당한 적자를 내다 문을 닫기로 결정,정리절차를 밟고
있다.

또 경제상황이 올들어 다소 나아지면서 지역별로는 보조금지급을 엄격히
제한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가 영국 전자단지를 세울때 전자레인지 분야를 놓고 주의회에서
첨단이냐 아니냐는 논란이 벌어질 정도였다.

사업의 종류에 따라 보조금 지급을 차등화하겠다는 방침 때문이다.

또 연구개발 기능을 강화해 달라는 요청도 뒤따른다.

이제는 생산기지 유치는 물론 외국자본을 활용 기술수준도 높이겠다는
전략을 담고있다.

유럽이 온갖 유인책을 내세우며 외국기업을 부르는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만큼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곳이기도하다.

이들에게는 한국기업도 유럽에서는 유럽기업인 것이다.

외적인 지원만 보고 달려들기에는 상당한 위험이 뒤따르는 곳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6일자).